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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다인 시인 / 얼음과 불의 노래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

정다인 시인 / 얼음과 불의 노래

 

 

시간은 눈꺼풀 위의 빙하

녹아내리는 빙장氷藏의 기억들이 살아난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

살아있지 않은 날 속에 갇힌

여린 날개를 꺼내면

 

오래된 도시,

폼페이의 불탄 눈꺼풀이 떨린다

검은 심장을 끌어안고 멈춰버린 빙장의 얼굴

불은 얼음이어서

멈춘 곳에서

시간의 얼굴을 바꾼다

사라져버린 도시의 주소처럼

허공을 맴도는 걸음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불과 얼음의

이율배반, 시간이 껴안은 건 까맣게 비어버린 눈동자

거기라고

누군가 거기라고 말하는 순간

얼음은 불의 그림자로 흘러내린다

 

뜨거움도 차가움도

내 안에 갇힌 잿빛 영혼의 일,

나는 사라진 도시를 걷는다

 

맨발을 내어주고

얼음의 얼굴로 불의 얼굴로 나는

치렁치렁 흔들린다

도시의 골목은 불탄 심장의 수기

한 걸음 다음은 무수히 많은 얼음 알갱이들의 기화

얼어붙은 팔다리를 묻어야 할 곳을 찾아

휘적휘적

날개였을 지도 모르는 불꽃의 기억을

눈꺼풀 위에 올리면 나는 까맣게 까맣게 녹아내린다

 

입에 머금은 노래가 얼었다 녹았다 다시 얼면

 

격월간 시사사201811-12월호

 

 


 

정다인 시인

2015년 《시사사》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여자 k』(한국문연, 2017)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