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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은 시인 /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고백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3.

김명은 시인 /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고백

 

 

무릎을 일으킨 검은 사제들이 성문을 통과한다

쏟아진 말들이 와르르 숲길로 길어진다

볼펜심에서 새까맣게 날아오르는 새떼

 

어떤 생각은 눈꼬리를 잡아당기고

어떤 생각은 입꼬리를 올린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저절로 입꼬리가 내려간다

진상이나 죽상이 된다

 

울음과 웃음은 체온이 같다 슬픔을 끌고 다니는

하얀 슬리퍼 같다 한 발은 출발 한 발은 도착

하나 둘 모르는 경유지에서 다만 의지했던

 

구두와 구두 사이 팽팽한 코 그 아래 혀의 통증

 

수없이 돋은 바늘꽃

단단하기는커녕 말랑말랑한 혀가 말린다

말린 혀가 발갛게 부푼다 해독제를 찾는다 뜻밖의 응급

여행지에서 물린 독이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망설임에 대하여 현실보다 상상을 믿을 것

 

봉쇄수도원 긴 벽에 기대어 인증 샷

셔터의 눈꺼풀이 떨린다 성에서 섬으로 이동 중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멈추지도 못하는 묵상

밤이 오지 않아도 깜깜하다 생각이 앓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8월호 발표

 

 


 

김명은 시인

1963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2008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이프러스의 긴 팔』(천년의시작, 2014)이 있음. 현재 〈빈터〉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