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박수빈 시인 / 스프링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7.

박수빈 시인 / 스프링

 

 

요즘 봄이 예전 봄이 아니야

미세먼지에 콜록이며 진눈깨비 진다

진눈깨비가 다가 아니야

그러니 생일이 된다

네가 새 애인을 데리고 내 생일 날 간 데로 다시 간다

좋은 추억만 간직해

그러니 새가 된다

가지에 앉아 제 심장의 온기를 전해주던 새가 날자

그러니 나무가 걷고 싶다

나무가 다가 아니야

그러니 벌레가 밑둥에서 스멀거린다

벌레가 다가 아니야

그러니 버스에서 졸고 있던 얼굴이 내리고

덜커덩 소리 나는 가방이 종점을 향하고

종점 도착할 때까지는 종점이 아니야

그러니 말이 막걸리가 되는 밤

이런지 저런지 박쥐가 된다

박쥐가 아니야

그러니 움이 트고

움과 몸의 난시는 도마뱀처럼 튕겨 나가며

꼬리들이 아니야 아니야

 

계간 『발견』 2019년 봄호 발표

 

 


 

 

박수빈 시인 / 뒤집힌 주머니의 먼지

 

 

수족관 벽에 붙은 전복

위에 올라탄 전복

더 큰 입 살얼음 낀 전복

등판에 냅다 으랏차 전복

몸통 맞대다

 

빨간 치마가 망을 들고서 휙 지날 때부터

성냥처럼 아랫도리가 뜨거워지곤 했다

 

엉킨 수초 같은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의 허공을 치받다가

꾹 다물어버린

 

내리는 눈발은 수족관으로 스미는데

병들고도 아프지 않은

딱딱한 내 갑옷

 

시꺼먼 얼굴 주변에 잇자국이 남아 있다

 

계간 『시인수첩』 2019년 봄호 발표

 

 


 

 

박수빈 시인 / 사물함 기르기

 

 

  전철역 물품보관함 안에서 강아지가 울고 있다

  안녕이 이토록 낯선지

  공처럼 동그랗게 웅크린 불안은 몇 킬로그램인가

 

  가던 길을 멈춰 서며 내가 저렇지

  맛있는 개껌을 준다기에

  꼬리를 꽃 모양으로 감으며

  공손히 두 손을 받치라기에

  뛰쳐나오는 소리와 발톱을 자르며

  화분처럼 나를 묻어버리기를 몇 십 년

  몸속으로 어떤 꽃이 지나

 

  불꽃이고 싶든 코끼리이고 싶든

  칸마다 지문을 덧댈 뿐

  내가 왜 있는지 모르고

  세상이 열리기를 바라다가 닫히는 손길

  길들어질수록 목이 쉬고

  소리가 없으니 있어도 없는 나는 벽이 되고 있다

  자물쇠를 물고 있다

 

  방부제 같은 바람이 문고리를 비틀까

  모서리가 많은 내 모습

  역행하면 아기가 될까

 

  나는 지금 어디에 유기되어 있는가

 

계간 『시현실』 2019년 봄호 발표

 

 


 

박수빈 시인

광주에서 출생, 시집 『달콤한 독』(다층, 2004)으로 작품활동 시작.  2013년 《열린 시학》 평론 등단, 저서로는 시집 『달콤한 독』과 『청동울음』, 평론집『스프링 시학』, 『다양성의 시』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상명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