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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하두자 시인 / 입술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7.

하두자 시인 / 입술들*

 

 

엘라타, 당신의 입술을 보여줘

발견되지 않는 식물도감처럼

도드라진 입술을 내밀어 주네

절정의 순간처럼 뒤범벅이네

 

남들은 생각하겠지

입술이 되어 주절거리는 거라고

꽃이 입술이 되는 순간

각설탕처럼 녹아내리는 혓바닥 탐 할 순 없어

 

이건 입술의 대화법

언제나 혼자되는 사람에게만 발병하지

노인 다음에 독거를 떠올리거나

죄수에겐 독방을 덮어 씌워서도 안 되지

 

이건 그냥 독백이나 방백이 아니야

초기증상은 화분을 사랑하는 일로 시작되지

붉거나 붉어지지 않게

화분과 꽃은 서로 무관하지

 

화분은 화분의 기본으로

꽃은 꽃의 기본으로

당신의 빨간 입술에 대한 선입견을 키울 뿐이야

 

그러니 엘라타

당신의 입술을 나에게만 보여줘

은밀함은 서로 원색 일 때만 가득 채워지는 법이니까

 

 *사이코트라 엘라타: 남미국가에서 자생하는 사람의 입술을 그대로 닮았다는 꽃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19년 여름호 발표

 

 


 

하두자 시인

1998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물수제비 뜨는 호수』와 『물의 집에 들다』, 『불안에게 들키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