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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령 시인 / 부부 판독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0.

이령 시인 / 부부 판독

-컴트레일에 묻다

 

 

파랑 일자

예기치 않게 찾아든 당신이

어쩜 매지구름 가르는 캠트레일 만큼 쓸까스르다

 

모르는 그대, 몰라서 안전한 그대여!

제 안의 어떤 허방에 이끌려 우리

하늘 밖, 길 아닌 길에 함께 있는가

 

오래 스민 인연이라면

공멸에도 질긴 피가 흐른다는 것

살가운 울바자이거나 각담 지천인 어느 길섶에서

그대는 영원히 몰라야 할 사람

 

문득 동행한 인연

난 달리고 넌 걷고 가끔 난 왼쪽을 바라보고 넌 오른쪽을 향해도

골똘하게 휑한 건 마음의 빈 고섶 때문.

 

우리는 더 진한 핏줄을 결탁해야 하리

당신은 영원히 몰라야 할 유일한 사람

아무리 걸어도 끝없는 하늘 길, 탄금을 긋는 단 하나의 획!

 

반년간 『고양작가회의 작가연대』 2019년 하반기호 발표

 

 


 

 

이령 시인 / 견전(遣奠)

 

 

하루치의 햇살을 말아 쥔 처마에 핀 철지난 와송,

혈이 막히는지, 치미 끝에 주검처럼 널브러져 있다

 

죽어서도 살아 기쁜 노제(路祭)가 어디 있을까

와락, 어떤 울음이 있어 이 면벽에 닿아

저리 애달프게 어스름 적막을 몰고 왔을까

 

계절 거스르는 개화도 아직은 이곳저곳

견딤의 시간을 더듬거려야 할 것만 같아

어제를 지우려면 멀고멀었는데 필사적인 내일도 더러는 푸름푸름 넌출 거리는데

 

북향 하늘에 노을 지는 한 얼굴이 있어

꽃은 져도 축관의 곡처럼 또 비가 내리고

햇살에 젖은 땅이 굳고 새가 울고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이별의 시작, 사랑의 지척을 기꺼이 품으면 그만.

 

적절한 별리다, 비린 생을 거두고 선

죽은 자의 행장, 버려서 아름다운 자세로

오늘의 휘장을 펄럭이며 생보다 먼저와 기다린 죽음, 영구에 든다

 

반년간 『고양작가회의 작가연대』 2019년 하반기호 발표

 

 


 

이령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2013년 《시사사》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2015년 한중작가 공동시집 『망각을 거부하며』출간. 현재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북혁신포용포럼사무국장, 젊은 시 동인 〈Volume>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