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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시인 / 거울
유리잔이 문득 창가에서 느린 속도로 떨어진다 파멸한 단맛을 보려는 의지는 개입하지 않았다
기나긴 슬픔에 비해 파국은 지나치게 짧다
유리는 이제 아무것도 비출 수 없다 잔은 사라지고 유리조각만 새로이 생겨났다
부수어진 아름다운 것들을 치우지 말자
누구도 너를 구해줄 수 없다 너는 일어서도 다시 자꾸 쓰러질 테지
나는 가만 있는데 내가 움직이는 거울, 나는 움직이는데 내가 가만 있는 거울을 종일 들여다본다
너는 자꾸 쓰러질 테지
기나긴 출혈에 비해 피는 너무 쉽게 응고된다 부수어지고 부수어진 슬픈 것들을 치울수 없다
거울은 여러 개의 거짓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월간 『현대시』2015년 4월호 발표
조용미 시인 / 연극적인 비
공중에서 노란 비가 툭 툭 굵은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머리에 닿으면 아팠다 누군가 튼튼한 우산을 내게 주었다 바닥에 떨어진 빗방울을 보니 앞쪽엔 앞의 죽음이 다른 쪽엔 뒤의 죽음이 새겨진 은화였다
세상에 은화비가 내리다니, 난 이런 환상이 싫다 이건 환상이 아니라구, 하듯 사람들이 옆에서 반짝이는 동전을 하나씩 주워 담는다 어쩐지 허리를 구부리고 싶지 않다 은화비는 더 세게 내 머리를 두드린다
도대체 하늘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 누구란 말인가 나는 커다란 공간 안에 들어 있고 하늘에 보이는 단지 몇 개의 구멍에서 은화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은화비가 쏟아지지 않는 안전구역으로 나가 우산을 구석에 던져버리고 조금 떨어져 수북이 쌓인 은화비를 바라보는 그들의 몸짓을 바라보았다
우산의 곡선도 노란 비를 만지는 그들 팔의 동작과 허리의 구부러짐도 모두 지나치게 연극적이었다 이걸 보라구, 비를 더 세게 내려 봐 하늘색 뭉게구름이 중얼거리며 투명한 천장 위로 지나갔다 은화비는 계속 물처럼 쏟아졌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수북하게 쌓인 죽은 비를 만져보았다
월간 『현대시학』 2015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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