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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시인 / 충만한 착시
저기 뒷모습이 걸어간다. 내가 수천 번 눈에 담았던 뒷모습이다. 눈에 욱여넣고 또 욱여넣고 카메라에 다시 담는 뒷모습이다. 어느 방향에서 들이대도 내 마음의 중심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뒷모습이다. 카메라는 다만 내 마음의 흘러넘침을 조금 거들 뿐, 하루에 한 번씩 나를 베란다에 우두망찰 세워두는 뒷모습이다. 조금만 더 천천히 걸어갔으면 싶은 뒷모습이다. <LG 25시> 모서리를 돌아설 때 그때서야 그물 같은 내 시선을 거둬들이는 뒷모습이다. 16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중 가장 오래 본 모습이다. 봐도봐도 물리지 않는, 왜곡된 내 시선의 항상성을 껴입고 가는 뒷모습이다. 뒷모습이지만 뒷모습도 아닌 모습이다. 걸어가는 것 같지만 다시 내게로 걸어오는 것 같은 뒷모습이다. 머리에 햇빛 세례를 듬뿍 받으며, 좌우에 도열한 나뭇잎 갈채를 받으며 저기 내 아이들이 아귀 같은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걸어간다.
계간 『애지』 2018년 겨울호 발표
김나영 시인 / 추천(鞦韆)
그네를 보니 올라타고 싶다. 그네를 보니 흔들리고 싶다. 오후 다섯 시 남아도는 셀로판지 같은 햇살들아, 오후 다섯 시 십 분 퇴근을 서두르는 햇살들아, 오후 다섯 시 이십 분 아보카도 오일 같은 햇살들아, 미끌미끌 나를 밀어다오. 내 발이 스폰지 케잌처럼 부드러워질 때까지 나를 밀어다오. 아니아니 등때기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나를 힘차게 밀어다오. 이 땅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모든 것들아, 내가 질식할 지경이니 부드러운 곡선이 넘실대는 저 허공으로 내 발을 담그게 해다오. 봄이 오는 방향으로 나를 탱크처럼 밀어 부쳐다오. 내 머리에서 푸른 피가 분수처럼 피어나게 박차를 가해다오. 내 안의 흔들림이 깨어날 때까지 나를 휘휘 저어다오. 여기 말고 저기로, 동이 서에서 멀듯이 남이 북에서 멀듯이 나를 멀리 밀어다오. 이 봄의 고삐를 놓치지 않게 분홍이 번지는 저 너머로 나를 밀어다오.
계간 『포엠포엠』 2018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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