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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필 시인 / 우산
비가 내리고 어떤 나무를 본다. 어떤 나무 아래엔 어떤 심연이 있다. 어떤 심연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슬픔이 있다. 나는 슬픔을 모르고 슬픔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슬픔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는다. 슬픔은 깊이 가라앉고, 나는 슬픔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비가 계속 내리고, 비가 계속 슬픔을 적시고, 슬픔 속에 빗물이 고여도 나는 슬픔에 대해 궁금하지 않는다. 나는 슬픔을 모르고, 모르고 싶고, 모르고 싶은 채로 계속해서 슬픔을 바라보기만 한다. 심연과도 한 뿌리라는 그 슬픔을 바라보기만 하고, 슬픔은 심연처럼 깊어지고, 그러다가 심연이 된다. 나는 심연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 나는 심연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나는 심연을 알지만 아무 말 않는다. 비가 내리고, 어떤 나무 아래 서서 끊임없이 어떤 말을 중얼대는 나를 본다.
웹진 『문장』 2015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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