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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문자 시인 / 거짓말을 지나며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2.

최문자 시인 / 거짓말을 지나며

 

 

이번 여름에도 거짓말이 슬쩍슬쩍 나를 지나갔습니다

동방은 어디인가?

추운 동방으로부터 왔다고 들었습니다

곧 허물어질 바람 위에 지어졌습니다

힘이 아니라

점이 아니라

선이 아니라

장미꽃 장면으로

팬스를 넘고

꽃잎을 접고

나에겐

거처가 없어요 라고 말합니다

 

거짓말에게서 동방의 가루약이 밝혀진대도

내 혀끝은 서쪽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아주 잠깐 믿었습니다

 

거짓말은 오렌지색

나직한 뱃고동 소리로 구슬프게 부릅니다

흐린 연필 끝으로

꽃을 그리며

나에겐

망치가 없어요

톱날이 없어요

위험이 없어요 라고 말합니다

 

한 여름 밤

여름 마지막 부분에서

뭉게뭉게 지나가는 거짓말

누군가는 거짓 시를 쓰고

누군가는 거짓 잠에서 깨고

누군가는 서쪽으로 거짓 바람을 보냅니다

 

여름에는

동방으로 난 창문으로

마음 놓고 거짓말이 드나듭니다

 

계간 『창작과 비평예』 2019년 가을호 발표

 

 


 

최문자 시인

1947년 서울에서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현대문학 박사. 저서로는 시집으로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 등과 그밖의 저서로는 『시창작 이론과 실제』『현대시에 나타난 기독교사상의 상징적 해석』등 다수가 있음. 협성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및 제6대 협성대학교 총장 역임. 2008년 제3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2009년 제1회 한송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