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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령 시인 / 외뿔소자리 성운에 길을 묻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3.

이령 시인 / 외뿔소자리 성운에 길을 묻다

 

 

  1.

 

  지금부터 난 귀를 눈이라 믿는 날들과 한 통속이지

  먼저 태어난 별을 신이라 믿는 종족의 영원한 하수지

  밤의 환상으로 창조된 바람의 형상으로 강림한

  무몰식(無沒識) 환상통이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길을 찾는지

 

  결국 내 것이 될 수 없는 의문들이 자라는 방에서

  나를 삼킨 소리의 웅성거림을 다독이며

  바닥에 배를 깔고 빛을 잃은 세상의 내밀함에 대해 골몰하지

 

  새벽보다 깊은 밤을 걷는

  우주의 성체(星體) 위에 귀를 건 난 눈 뜬 귀머거리

  지상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지상까지 두루 숨어있는 소리에 매몰된 채

  손톱을 숨긴 겨울바람이 전하는 세설(世說)을 온 몸으로 맞고 있지

 

  2.

 

  밤은 너무나 가혹한 미래여서

  표정을 감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듯

  낮의 표정을 싹 갈아 치우지

 

  난 언제쯤 저 곳에 닿을 수 있을까

  오글거리는 소리와 나불거리는 입들을 경배할 수 있을까

 

  소유거리에 들고 싶은 마당귀 소사나무조차

  이참에 귀를 닫고 잠든 밤

  꼬리별들이 자꾸만 쏟아지는 밤

  머나먼 나와 가장 가까운 당신과 당신들을 물고

  소리의 입각점을 찾을 망원경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밤

  창 너머 미립자 별들도 혼자서는 길을 잃고 별무리 지는 밤

  빛과 어둠의 이음매를 찾아 떠도는 소리의 도굴꾼처럼

  별 그림자 하나 나를 베끼고 가는 밤

 

  홀로 발광(發光)하는 모리배

  세상의 모든 배반을 노래하는 디스토피아, 밤

  소리는 소리를 먹고 자라 외뿔을 달고 하늘을 밝히지

  눈을 감고 귀를 열면 온전히 하늘에 닿을 수 있지

 

 계간 『CULTURA』 2016년 겨울호 발표

 

 


 

이령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2013년 《시사사》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2015년 한중작가 공동시집 『망각을 거부하며』출간.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이며 동리목월기념사업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