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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방민호 시인 / 나가사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4.

방민호 시인 / 나가사키

 

 

  이월에

  벌써 햇빛 따사로운

  나가사키에서

 

  삶은

  일찍

  죽음이 되었고

 

  그렇게 해서

  죽음은 삶이 되었다

 

  사람들은 여기서

  까맣게 타버린 숯덩이가 되었다가

  기적처럼

  살이 새로 돋아

  체온을 품은 몸속으로 돌아오고

  그곳에 사랑하는 마음의 불을 지핀다

 

  나가사키는

  그렇게 새로운 부활을 위하여

  스물여섯 성인을 제단에 바쳤다

 

  삶에 부활이 있으려면

  먼저 죽어 내일을 기다려야 한다

 

  벽화 속에서

  스물여섯 사람의 발은 나란히

  허공에 들려 있다

 

  그렇게 나가사키는

  죽음의 땅에서 떠올라

  새 생명을 얻었다

 

  역사를

  미움을

  슬픔을

  먼저 버린다

 

  햇빛 따사로운

  이월의 나가사키에서

  발끝으로 발돋움을 한다

 

  선택 없이

  먼저 맡겨진 것을 버리면

  새로 살아나

  사랑할 수 있다

 

ㅡ나가사키는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다. 그곳에서 옛날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에 천주교 박해로 스물여섯 사람이 순교하기도 했다.

 

웹진 『시인광장』 2017년 4월호 발표

 

 


 

방민호 시인

1965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94년 제1회 《창작과 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평론 활동 시작.  2000년 《현대시》를 통해 시단 등단. 저서로는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와 『문명의 감각』 등이 있음. 현재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