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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월 시인 / 기차는 달리고 시는 써지지 않고
기차는 달리고 시는 써지지 않고 사계절 시들지 않을 포도를 따 먹고 시 대신 씨나 뱉는다
기차는 달리고 시는 써지지 않고
수많은 과수원 이정표 같은 포도 넝쿨은 쿨렁쿨렁 잘도 뻗어 나간다 詩에는 씨알맹이가 없고
기차는 달리고 시는 써지지 않는데
포도 알에 박힌 깐깐한 포도 씨를 시 대신 뱉고 또 뱉으며 기차는 달리고 시는 왜 이렇게 써지지 않는다
포도밭이 끝나는 마을로 기차는 달려가 멈추나?
실한 포도나무 나뭇가지 하나 꺾어 내 몸에 접목한 정수리에서 포도송이 거의 다 익어가지만
기차는 달리고 시는 써지지 않고
신맛 가시지 않아 아직 그대로인 시의 행간에 포도는 넝쿨 뻗고 기차는 달리고 시는 써지지도 않는데 종착역은 다가온다
잘 익은 포도를 맘껏 따먹고 차창 밖으로 포도 씨를 힘껏 던져도 죽어라고 시가 씨를 맺지 않는 날 그런 날일수록 무작정 기차를 탄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9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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