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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미산 시인 / 우리는 잊기 위해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5.

이미산 시인 / 우리는 잊기 위해

 

 

오이꽃 피면

뻐꾸기 우는 숲에 간다

내 안의 노랑 꺼내놓고

상한 꽃잎 깁는다

 

뻐꾸기가 키우는 숲의 그늘

그늘을 베고 누운

사랑할 기회를 놓쳐버린 사랑해야하는 것들의 흐느낌

 

노란 머리핀이 어울리는 저 아이,

내게로 떨어지는 별똥별,

아이가 사라지는 골목 어디쯤

어쩌면 우리가 피어나는 그때,

 

눈부신 날이에요,

시작되는 도마질, 엎드려 닦아내는 하루, 수줍은 손이 서투른 손에게

내 노랑을 받아주세요,

 

오이꽃이 희미하게 웃었다면 잊기 위해서일까 잊지 않기 위해서일까

노랑은 브레이크가 없다 지치면 가시가 돋을 뿐

 

놓쳐버린 것들이 자꾸 피어난다

눈 감으면 어쩌자고 더 선명해진다

레테에 띄운 이름이 되돌아오고 있다

 

오이꽃 지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노랑은 씩씩하다

다시 시작되는

잊기 위해

 

웹진 『시인광장』 2019년 9월호 발표

 

 


 

이미산 시인

1959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6년 월간《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한국문연, 2010), 『저기, 분홍』(현대시학, 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