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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성 시인 / 어족들
가장 깊은 바닥에 닿아본 적이 있는가 물에 파묻힌 바닥 거기에서 잠을 자본 자들만이 어족의 자격을 얻는다 어둠 속에서 물관을 더듬는 족속들 바닥. 흙. 자갈. 모래. 바닥이 두려운가
두려움? 이미 물에 빠진 자에게도 공포가 찾아오는가 그러나 물에는 폐허가 없다 영혼이 바닥에 닿아봐야 진실을 볼 수 있지 나는 이따금 물의 영혼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어 시들어버린 수초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들
돌. 자갈. 모래. 흙. 진흙. 물에서 태어나 물로 돌아간다 잠. 수면. 수면. 睡眠. 水面. 獸面. 물이 우리의 무덤이고 요람이다 그래서 어족들의 최후는 흙에 묻히지 않고 물에 흩어진다 물의 운구 물의 장례식
나무의 물관은 물에서 기원한 혈관이다 물속으로 뻗어있는 실핏줄 같은 물관들 검푸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울에서 물은 불이 된다
여울. 범람. 유속. 세찬 물굽이. 세찬 강물 소리. 세찬 물소리. 고요한 물소리. 파도치는 소리 물결이 바위를 스치는 소리 모래를 쓸어가는 소리 자갈들이 자갈들을 비벼대는 소리
물속에서 부는 바람 소리 물의 영혼이 숨쉬는 소리 멸종 직전의 어족만이 물의 얼굴을 알아보고 표정을 읽어낸다
물의 날에 베인 물고기들은 먼 훗날 그게 상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장 순결한 상처 물이 상처였다는 상처가 치유였다는 물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흘러 떠나고 오랜 시간 뒤에
黙言 말 많은 자들은 여기서 죽어야 한다 흰 배를 드러낸 어족들처럼 끝없이 흐르는 물속에서 말을 벗어 버리고 魚族은 비로소 語族이 된다
격월간 『시사사』 2013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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