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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금숙 시인 / 여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6.

나금숙 시인 / 여름

 

 

버스에서 내려

너의 집 앞으로 다가갈 때

외양간에서는 어미소가 선 채로 송아지를

막 떨어뜨리고 있었다.

내가 마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송아지는

비척거리며 다리에 힘을 주더니

일어서서 겅중거렸다..

정오의 빛을 반사하는

갓 태어난 송아지의 털빛이란!

암소의 다리 사이로

기분 좋은 바람이 흘러 돌아나가고

여울에는 돌사과가

향내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었다.

허리까지 우거진 잡초들,

풀벌레들이 소리 높여 울다가

갑자기 그치는 적막 속에서

너와 입맞추기 위해

멈춰 섰다.

미술관 소음 회화 앞에서

음향을 듣기 위해 단추를 누르듯이

모자를 한껏 젖히고.

강이 하늘에 걸리고

낮달이, 물고기들이 그 강을 건너고 있었다.

 

계간 『사람의 문학』 2018년 봄호 발표

 

 


 

 

나금숙 시인 / 퇴행

 

 

무서운 꿈을 꾸었어

난간 위에서 급류 속으로 떨어지려는 네가

제발 나를 잡아 줘

제발 나를 놓아 줘

라고 속삭일 때 내가 놓아버린 손

끌어올릴 힘이 없는 나는

허리를 꺾어 온몸으로 끌어당겨도

힘이 딸리는 나는

등 뒤로 지나가는 그림자들에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어

소리는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어

스르륵 풀리는 손아귀

너는!

탁류 속으로  떠내려갔어

봉긋이 부푸는 웃옷

부채살 같이 펴지는 검은 머리카락

몇번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서서히 물 속으로 사라지는 너

이대로 끝인가

안녕이란 말

떠나고 남는 역할이 수십 번 바뀌었지

이별 속의 이별이

정말 다가왔어

 

계간 『열린시학』 2018년 가을호 발표

 

 


 

나금숙 시인

전남 나주에서 출생. 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 나무 아래로』(새로운사람들, 2003)과 『레일라 바래다주기』(시산맥사, 2010)가 있음. 서울시 공무원 역임.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논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