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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끝별 시인 / 끝없는 나무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7.

정끝별 시인 / 끝없는 나무

 

 

  물에 빠진 생쥐소리를 내며 떨어졌어요

  한 방울! 저런

  수직의 벼랑에서 길을 잃었으니

  이 계절을 지나려면 천 년은 걸어야 해요

  두 발이 닳을 때까지

  두 눈이 닳을 때까지

 

  끝이겠지 하면 차올라 온몸에 출렁거려요

  나무의 껍질에 배어나는 말간 노래들

  밤바다를 통째로 삼킨 초록 아가미처럼

  몸 속 그늘 다 집어삼키고

  밤하늘을 떠메고 가는 흰 별떼처럼

  축축한 마음 그렁그렁 떠메고

 

  반 배부른 초열흘 눈물이 뭉클

  한 계절 흠씬 젖어,

  강물 같은 한 소절을 완창하려면

  걷고 걷고 또 걸어야 해요

  두 발이 다 닳을 때까지

  두 눈이 다 닳을 때까지

 

  참 깊은 뿌리에 고여

  참 높은 가지에 맺혀

  한 천 년 떨어지면 한 꽃 피우겠지요

  천구(天球)의 눈물로 키우는

  내 눈먼 미륵 한 그루

 

 


 

 

정끝별 시인

1964년 전라남도 나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석, 박사학위. 1988년 '문학사상' 신인 발굴 시 부문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이 당선. 1994 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으로 당선되어, 시작 활동과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이 있고, 시론, 평론집으로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시해설집 『시가 말을 걸어요』

『행복』 『밥』 『한국애송시 100편──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가 있고, 산문집 『여운』 『그리운 건 언제나 문득 온다』 가 있다. <유심작품상>과 2008년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