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선우 시인 / 어떤 포틀래치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7.

김선우 시인 / 어떤 포틀래치

 

 

겨울 사막을 막 건너온 길이었다. 홑겹 단화 밖으로 맨발목이 발갛게 드러난 여자가 딸애의 누더기 바지를 벗기고 철화덕 옆에서 오줌을 누이고 있었다. 여자도 딸애도 얼어터진 볼이 달빛처럼 붉어서 내 손이 여자를 향해 사막식물처럼 뻗어갔다. 여자가 달빛을 털며 철화덕에서 꺼낸 군고구마 한 봉지를 넝쿨에 감아 주었다. 3위안이라 했다. 딸애가 나를 쳐다보며 물 번진 성에꽃처럼 웃었다. 발갛게 언 엉덩이를 아직 내놓은 채였다. 나는 10위안을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가 거스름을 찾는 동안 딸애의 물기가 내 넝쿨 시든 잎사귀 몇 장을 적셔 주었다. 그걸로 충분했으므로 나는 거스름을 사양했지만, 여자가 내 넝쿨을 휘잡아 채며 검고 큰 눈망울로 나를 닦아세웠다. 부야오!

 

여자는 거스름을 주지 않았다. 봉지를 도로 거두어 고구마를 미어지게 더 담은 후 내 넝쿨에 다시 올려주었다. 여자가 무어라 빠르게 소리쳤고, 고개를 갸웃하자 내 손을 잡고는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의 말만 또박또박 넝쿨 위에 얹었다. 게이 니, 리우!

 

난전으로 파며 감자를 팔러 다녔던 엄마도 누군가의 넝쿨에 선물을 매달아 준 적이 있을 것 같다. 필요 없다! 대신 이건 선물이다! 적선을 받지도, 거스름을 돌려주지도 않은 여자는 군고구마 세 몫을 한번에 팔았을 뿐이었다. 함박눈처럼 여자가 판 것은 선물이 되었다. 여자 옆에서 어린 나도 누군가의  넝쿨을 적셔줄 수 있었을까. 너에게 줄게, 선물이야. 길 끝 여자의 달빛이 내  넝쿨로 번져와 말 배우는 아이처럼 입 속이 환했다.

 

 

*부야오 : 필요 없다, 이러지 말라, 는 뜻의 중국어.

*게이 니 : 너에게 준다, 는 뜻의 중국어.

*리우 : 선물, 이라는 뜻의 중국어.

 

 


 

김선우(金宣佑) 시인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6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어른이 읽는 동화 『바리공주』.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