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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시영 시인 / 호명(呼名)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7.

이시영 시인 / 호명(呼名)

 

 

  한번 불려간 것들은 다시는 오지 않는 것인가

  내 등 두드리며 여기 서서 기다려라 하고 간 바람은

  산 넘고 물 건너가 다시 오지 않는다

  대 수풀에 머문 구름에게 물어도

  구름 위에 날개 접은 솔개에게 물어도

  바람이 한번 간 곳 알지 못한다

 

  한번 불려진 별들은 다시는 빛나지 못하는가

  간밤에 불려진 한 별

  큰 눈으로 지상을 굽어보며 빛나다가

  새벽 하늘가에 스러져서는

  다시 빛나지 않는다

 

  한번 흔들린 풀들은 다시는 멈추지 못하는가

  제 선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

  한번 고개 돌린 풀들

  다시는 고개 돌리지 못하고 서서 흔들리다가

  누군가의 찬 낫에

  이슬을 흘리며 쓰러진다

 

  한번 눈 부릅뜬 것들은 다시는 눈뜨지 못하는가

  여름 잎사귀에 눈 부릅뜬 햇살 하나

  잎사귀를 녹이며 구르다가

  물 위에 떨어져 돌을 태우고

  다시 눈뜨지 못한다

 

  한번 불려진 것들은 다시는 불려질 수 없고

  한번 대답하고 돌아선 것들은

  다시는 이전의 것이 될 수 없는가


바람 속으로, 창작과비평사, 1986

 

 


 

이시영(李時英) 시인

1949년 전라남도 구례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時調)가,『월간문학』신인상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만월』『바람 속으로』『길은 멀다 친구여』『이슬 맺힌 노래』『무늬 』『사이』『조용한 푸른 하늘』등 다수. <정지용문학상>과 <동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