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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향란 시인 / 아가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2.

이향란 시인 / 아가書

 

 

  나는 언제 태어나겠니

  나는 어디에 머물러있으며 대체 어느 정도 자란거니

  머리와 몸통, 두 팔과 두 다리, 심장을 지닌 야생의 동물이니 사람이니

  눈물을 흘리거나 기뻐 날뛸 줄은 아는 거니

  어쨌든 사랑은 하겠지 할 줄 알겠지

  혹시 이름 없는 별로 태어나 암흑의 우주공간을 떠돌게 되는 건 아니니

  아니, 아름다운 우주일지도 모르겠다만

  나의 탄생이 너에게 만은 신비였으면 좋겠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너를 들여다보듯이

  너도 나를 그렇게 들여다보아주었으면 좋겠다

  꽃이든 별이든 나비든 사람이든

  무엇이 보이니

  무엇이 느껴지니

  네가 네게 오기까지의 시간처럼

  나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면 내게로 닿겠니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나로 탈바꿈하는 중이니

  아름다운거니 추한거니 말을 하니 못하니

  한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한 채의 집이거나 한 마리의 동물이거나

  단 한 개에 불과한 희귀종일지라도

  나는 계속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몇 차례의 거듭된 시도로

  두껍거나 얇아진 푸른 불멸이었으면 좋겠다

  아가, 나는 어디에 있니

  네가 바라보고 있는 게 정말 나인거니

  어둡지만 깊고 고요한 네 눈의 늪으로

  미완의 나를 초대해주면 안 되는 거니

  얼마나 더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거니, 아가

 

웹진 『시인광장』 2017년 4월호 발표

 

 


 

이향란 시인

1962년 강원도 양양에서 출생.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2002년 시집 『안개詩』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그밖의 시집으로  『슬픔의 속도』, 『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 『너라는 간극』가 있음. 2009년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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