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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금시아 시인 / 사라진 양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2.

금시아 시인 / 사라진 양

-겐트의 제단화

 

 

  철망에 갇힌 양을 보려면

  철망에 눈을 바짝 붙이고 얼굴을 감추어야 해

  어린 양들의 경배*는 또 다른 우주야

  의혹은 늘 진실 뒤에 서 있어

  덧발라 고치고 감추어도 보리싹처럼 삐져나오지

  종려나무 가지에서 흘러나오는 어린 양의 피

  성배에 팔각의 우물을 담아 들판에 흩뿌렸어

  들판에 가득 핀 풀꽃들

  제단의 양은 양이 아니야

  귀가 둘인 양은 어디에서 울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큰 돋보기가 필요해

  의혹은 물에 말아 벌컥벌컥 마시는 거야

  수수께끼는 붉어져야 해

  문득 붉은 포도주 속에 울고 있는 어린 양

  어린양의 울음소리 들려오면 무릎을 꿇는 거야

  조급한 신앙은 양의 탈을 바꿨지

  의혹은 남자와 여자를 나누었고

  남자와 여자는 귀가 밝았지

  몇 꺼풀 벗겨내니 네 개의 귀가 생겨났어

  네 개의 귀라니

  알고 있니, 어린 양이 사라진 거야

  양의 뿔이 두 개든 네 개든

  정황을 추론해 보면 뿔도 자란다는 거지

  기도하는 십자가는 어둠 속에서 더욱 하늘을 찌르지

  기억해 둬 어린양은 별자리라는 걸

  빛의 속도와 각도 사이에서

  진줏빛 기도의 눈꺼풀 얇아지고 있어

  풀밭에서

  풀꽃을 뜯고 있는 어린 양을 초대해야지

  어떡하지, 귀가 보이지 않아

 

 

*벨기에 성바프 성당에 있는 얀 반에이크의 패널화

 

웹진 『시인광장』 2015년 6월호 발표

 

 


 

금시아 시인

1961년 광주에서 출생. 2014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시집으로 『툭,의 녹취록』(시와표현, 2015)가 있음. 제3회 여성조선문학상 대상, 제17회 김유정기억하기전국공모전 ‘시’ 대상, 제14회 춘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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