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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환 시인 / 걸음
걸음은 걸으면서 걸음마다 피는 꽃들과 녹아내리는 얼음을 생각하고 방향이 없이 방황하는 걸음은 구두 뒤축처럼 딱딱하게 굳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른 걸음이 올 것 같은 골목에 서서 걸음 속에 걸음이 왼발과 오른발이 번갈아 움직이면서 엉덩이와 어깨가 춤추듯이 흔들리는 길을 따라 흘러가는 걸음의 리듬을 기다리는데 나는 걸음을 가두는 걸음에 갇힌 채 걷지도 못하고 바다로도 가고 싶은 걸음이 산에도 못가고 집에도 못가고 걸음을 포기하고 걸음으로 남아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걸음을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고 걸음이 흘러내리고 녹아내리고 바닥에 스며 새로운 걸음을 완성할 때까지 또 다른 걸음을 꿈꾸는데
계단을 오르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걸음을 따라 걸으면 죽은 걸음이 온통 가득 넘쳐 출렁이는 걸음의 파도 걸음의 슬픔 걸음의 얼음 걸음의 덧없음 걸음의 넘어짐 움직이지 못하는 걸음 그대로 압정으로 벽에 꽂아 걸음을 걸어놓고 걸음걸이를 감상하고 그러고 보면 걸음은 걸음을 멈출 때 가장 걸음에 가깝고 걸음은 내 시의 거름이 되어 치사하게 머릿속에 얼어붙은 걸음으로 시를 쓰고 나를 여기서 저기로 옮겨주는 걸음은 문이 없는 걸음으로 걸음을 끝내려고 뛰어내린 사람들의 걸음은 죽음 주검 무덤 까마득한 바닥의 정지 꽃 검은 얼음 나는 나를 죽음에 걸음 정지 멈춤 고 스톱 차렷 멈추고 스톱 영원히 지속하는 걸음 찰나의 시간과 무한한 시간의 깊은 울음 감금 설움 시름 걸으면서 노래하고 걸으면서 춤을 추고 걸으면서 속삭이고 걸으면서 같이 걷고 걸음 속에 꽃이 피고 걸으면서 진짜 걸음이 되고 나는 가장 화려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걸음이 되어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지상의 걸음을 걸으며 그렇게 걸음마다 나를 심어놓는 걸음이 어떻게 스스로 무너뜨리는지 지켜보고
계간 『시현실』 2016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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