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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율 시인 / 밀채 구독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7.

조율 시인 / 밀채 구독

 

 

아파트 통로를 들어서는 왼쪽에는 아픈 집들이 숫자로 매겨진다.

 

그그 들들의 가슴판 그을음으로 문장이 지워진 파지처럼

쇠빛 우편은 목구멍이 턱 막힌 채 서쪽 하늘을 끄려다

두껍게 저의 집을 만든다.

 

자꾸만 이름을 틀린다, 강판

어느 볕에서 죽은 이름이다.

탁탁하게 떠났을지도 모르는 이름을 부르는 강판이다.

이런 것들은 지워진 자리를 익혀먹는 수사의 바깥이다.

 

어제와 모레와 글피와 석 달 같은 토막 시간이 창 레일에 옅은 점을 찍었으며… 함묵증 학자처럼 매 달을 살았으며… 바다가 되기도 했다.

 

사라지는 것은 남겨진 자리에 무엇이 쌓이려다

마는 編(편), 한 이십 오륙 년 전쯤 부업하는 2층집 옆 빌라 우편에는 사마귀 붙어 손잡이시늉 하다 부러지듯 날아

살 듯이 막힌 하늘을 뚫다 갔다.

 

우편에 꽂힌 두터운 지렛대가 어느 날엔 저물녘을 켠다.

노을 켜기도 전에 날개 부러진 곤충 한 마리가 새 계절을 켜려 왔다.

누가집어다 놓은 것, 같은 풍경들이 밀려온다.

 

둥글어지는 힘은 원통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있는가, 시작한다는 것은 빠르게 밀려올 소멸을 알아채는 둥근 힘을 지녔다.

 

정전의 두께

수 없는 그 괴괴한 사랑이다.

각각 방에 암흑 쏟는 권총하나를 숨겨두고 산다.

검은 비, 하늘 요란히 쓸어간 밤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0월호 발표

 

 


 

 

 조율 시인

1983년 인천에서 출생.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7년 윤동주시문학상 「동백꽃치마」당선. 2013년 《한라일보》에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