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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사윤수 시인 / 저녁이라는 옷 한 벌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30.

사윤수 시인 / 저녁이라는 옷 한 벌

 

 

 누구에게나 옷 한 벌이 있다

 모양과 색깔이 없는 옷

 눈에 보이지 않고 벗을 수 없는 옷

 잘 때도 입고 자는 저녁이라는 옷

 이것은 인류의 오랜 풍습인데

 어느 날 누군가가 갑자기 영원히 잠들더라도

 저녁이라는 옷 한 벌은 이미 늘 입고 있어서

 금세 어두워지기 쉽다

 

 밤이란,

 옷이 필요 없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생(生)의 문지방에 저마다 벗어놓고 간

 저녁이라는 옷들이 쌓인 현상이다

 그때 슬픔이 옷더미 벽에 자꾸 머리를 찧으며 부딪쳐

 이쪽이 한동안 캄캄해지는 일이다

 

 남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사이에 옷이 있다

 옷을 건너간 사람은 다시 옷을 건너올 수 없고

 옷을 붙들며 남겨진 사람은 옷을 건너갈 수 없다

 불이 서둘러 옷을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서로 헤어지거나 멀어질 때

 손이나 발보다 옷자락을 붙잡고 우는 풍습도 그래서 생긴 거 같다

 

 시간의 뜨개실로 짠 옷을 입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하나의 작은 저녁이다

 이겨도 져야 하는 노을처럼

 어두워지면 저녁이라는 접두사가 붙지 않는 것이 없다

 

계간 『시산맥』 2019년 가을호 발표

 

 


 

사윤수 시인

1964년 경북 청도에서 출생. 영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파온(婆媼)』이 있음. 2009년 한국문화 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