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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경성 시인 / 캥거루와 해바라기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

김경성 시인 / 캥거루와 해바라기

 

 

잘 익은 햇빛과 바람이 긴 목을 타고 넘어와서

당신의 입술을 적시던 시간

너무 멀리 가있다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냄새로 가득 차 있는

오크통에서 발효되었던 시간,

코르크를 따는 순간 어떤 기류에 휩싸였었다

 

캥거루 그림이 그려진 와인 병 더는 빈 병이 아니다

달려가는 캥거루의 발뒤꿈치가 눈에 걸린다

 

누군가 꺾어서 버린 해바라기 몇 송이

캥거루의 뱃속에서 마르고 있다

시간을 읽지 않는 해바라기

살아있는 동안 해 뜨는 곳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해 지는 쪽을 바라보리라

 

캥거루는 달려가고

해바라기는 점점 더 고개를 숙이고

저 옆에 아날로그시계를 놓으면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마른 해바라기를 꺼내놓고 병을 굴려본다

캥거루가

뒤로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0월호 발표

 

 


 

김경성 시인

전북 고창에서 출생. 2011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와온』과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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