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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도은 시인 / 창을 버린 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3.

김도은 시인 / 창을 버린 새

 

 

  길 잃은 새 어딘가로 향한다..

  몸 속 쪼아대는 빛의 관통을 철커덕, 새는 한 번 죽는다.

  회색날개 자줏빛 소파에 묻는다.

  어디선가 새를 부르는 신호, 창으로 쏟아지는 빛 여울, 눈동자 속으로 스며 흩어진다.

  회색창을 열자 그림자 몇 점 서성인다.

  밑 없는 구멍, 알 수 없는 깊이, 철커덕 새는 두 번 죽는다.

  물이 흐르고 햇살 녹아내려 세상이 맑다

  미로는 나가지 않아도 되는 재미, 철커덕 새는 세 번 죽는다.

  새는 어디에선가 다시 눈을 뜬다.

  사십칠호 문이 열리고 가슴에 뿌리 내린 나무

  하얀 달빛을 먹는다

 

2015년 제4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당선시

 

 


 

 

김도은 시인 / 4시와 5시 사이 Wee클래스에서

열일곱 살의 몽타쥬 작업을 하다

 

 

우현의 몽타쥬 (닉네임: 갈치)

 

음성 녹음 87번은 리셋이다 ‘난 아침마다 갈치 이빨을 칫솔로 닦는다’

몽롱해진 소리 사이로 새벽 갈치들이 모여 든다 17번 소리 작게 끊어지고 숨소리 끝은 스크래치 난다 꼬리에 대롱거리는 은빛들, 움칠거리며 입속으로 넣는다

세면기엔 바다가 없어? 누군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난 이빨을 닦으려고 했던 게 아니었어 빛이 필요했지 은빛 비늘들이 떨어진 세면기 속, 꼬리가 흔들릴 때 마다 호흡이 잘려 나갔어 난 입을 벌려 칼을 넣고 머리를 잘라냈어 은빛들은 지워져 버렸지 난 이제 바다로 돌아갈 수 없어 마법이 풀리지 않을거야

바다 냄새, 미역 사이로 내 꼬리들이 미끄러지던 시간들...

잘려진 머리가 어디로 갔을까?

 

상준의 몽타쥬 (닉네임: 뼈)

 

내 뼈들이 감옥에 있다

17번째 뼈가 검은 박스에 옮겨진다 박스에 갇인 뼈들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딱딱딱 따닥 따닥 ...웃음소리는 높낮이가 없다

엄마가 뼈 없는 닭을 배달시킨다

금요일이면 내 뼈들은 검은 박스에 갇혀 뼈 없는 닭과 함께 집 찾기 놀이를 한다

뼈와 닭들이 내 험담을 시작한다 ‘그 자식은 신사가 되지 못할거야’ 라고

난 신사의 품격을 갖췄다고 거들먹 거렸지만 뼈들은 자꾸 떨어져 나간다

난 검은 박스를 지우고 싶다 손을 움직일때 마다 마법에 걸리게 한다

‘검은 박스에 갇힌거지 ?’내 뼈들은 그걸 말해주지 않는다 뼈없는 닭들조차도 내가 갇힌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난 감옥에 갇힌 내 뼈들을 찾을 수 있을까?

뼈 없는 닭들이 배달되는 금요일을 버릴 수 있을까?

 

예인의 몽타쥬( 닉네임 :꽃님)

 

꽃님이 이빨이 모두 빠져 버렸어요

치과 선생님이 ‘아무래도 임플런트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꽃님이 말했어요 “난 이제 열일곱 살이예요! ”

치과 선생님이 자꾸 무언가를 적었어요 꽃님은 치과 선생님의 펜을 따라 말했어요

 

나비를 따라가고 싶었어요

발 뒷꿈치에 묻은 바다모래 냄새를 맡고 싶었어요

소라색 장미도 궁금했어요 로즈마리 향이 어떻게 나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타잔처럼 소리치고 싶었어요 “아~ 아~ 아~”

노란물방울 우산을 펴고 하루 종일 비를 맞고 싶었어요

보리밭 길 옆 철조망에 걸려 있는 내 옷핀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옷핀에 꽂힌 구름 한점, 둥근 시간을 열바퀴 돌고

햇빛 조각이 물위에 보석처럼 빛나는걸 보고도 싶었어요

드릴에도 솜털이 나는지 지칠때까지 들여다 보고 싶었어요

모자속에 코끼리가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 보고 싶었어요

보아뱀이 코끼리랑 이야기 하는걸 엿듣고 싶었어요

앨리스가 사는 나라에도 가고 싶었어요

열일곱살에 잃어버린 꽃님의 이빨들은 어떻게 할까?

 

강솔의 몽타쥬 (닉네임: 미친소)

 

시간을 사고 싶은 날들이 생겼어요 용돈을 모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죠 내 주머니속 교통카드에 13000원 이 들어있어요 다른 시간들을 기웃거려 보죠 난 가격의 흥정도 못해본 채 주머니 속 교통카드만 만지작 거려요

시간이 바람에 날려 가는 것 같았어요 2학년 8반 마루바닥 틈새에도 시간은 끼여 있어요 내 노란 머리 사이에 네시오분이 염색되어 있어요

노을이 지는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셔플을 추며 컨버스 신발로 시간을 밟았어요 비트 강한 일렉트로닉 음악, 노란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을땐 시간을 사야 될 일도 없고 시간을 잃을 일도 없다고 느꼈죠 미쳐버릴 것 같은 시간이면 어김없이 누군가 내게 미친소라 불러주었어요 발바닥에서 단내가 날 즈음 주황색 컨버스를 벗어 던지고 붉은 노을에 발을 담갔죠 왼쪽 발은 홍단, 오른쪽은 비 광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양말의 짝을 맞춘다는 것은 내가 사고 싶은 시간을 살 수 없는 신호라고 생각했어요 맞추고 싶지 않은 양말짝, 시간을 사야되는 시간, 귀밑 머리카락 끝으로 매달린 시간을 내가 찾은 시간이라고 말하면 안될까요

 

안나의 몽타쥬 (닉네임 :고슴도치)

 

고슴도치는 오후 네시 담벼락 아래 웅크린다 시멘트 벽돌 담장 위, 깨진 유리병 조각이 박혀있다 담벼락 귀퉁이 흰색 분필로‘고슴도치 벙어리’씌여 있다

담벼락에 꽃을 그리면 줄기 그리기 전, 꽃봉오리 사라진다

고슴도치는 햇살에 눈을 흘기며‘꽃내도 못 맡았는데 숨기면 어떻게 해’

양갈래 머리 가르마 속 땀방울, 꽃봉오리가 된다 고슴도치는 마술사가 될 거라 하고 누군가는 갓난아이 지능이라 말한다

고슴도치는 혼잣말을 한다

‘난 벙어리 아니다 사람들이 말이 많아졌을 뿐이야 ’

고슴도치는 하늘을 본다 ‘난 햇살 너 하고도 말할 수 있어 ’

햇살이 말한다 고슴도치 널 담벼락에 세워두고 햇살 물 들여줄게 네 몸이 금빛으로 물든걸 보면 모두들 널 바라 볼 거야‘

고슴도치가 말한다 ‘모두들 날 이상한 벙어리라고 말하지 않을까?’

 

 


 

김도은 시인

2015년 제4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