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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정옥 시인 / 1001번째의 섹스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3.

안정옥 시인 / 1001번째의 섹스

 

 

  불운은 필요한 물건, 내 앞에 앉은 침울이여

 

  무수히 맞섰지만 그것만으로는 되질 않아요

  집안에서부터 문밖까지 황홀한 꽃만 차있으면

  그건 없는 삶, 없는 물증이지요

  부딪치는 일들이 오래 필 꽃을 능가하면

  어떠했을까요 옳지 않은 건 꽃의 종류보다

  다양해요 나도 주먹은 세요

  그것만 가지고는 그 모든 걸 밀어트릴 수는 없어요

  그러니 어느 순간 속 깊어 쓴, 운문이 그렇게 소용될 줄

  몰랐어요 한결 잠잠해요

  그러나 1000번이 넘었을 때 날 어떻게

  말리겠어요 1001번째엔 섹스를 했다한들

 

  1001번의 작품은 1000번쯤이나 나를 애쓰고

  시들어가는 죽음이듯 나를 두렵게도 하였지요

  1001번째의 울음은 1000번의 뺨 위에

  여러 눈물 덧댄, 그렇게 흘러온 속도인 걸

  그러나 1000번이 넘었을 때 세상이 날 어떻게

  위로하겠어요 어디에도 없을 나의 젊은 애인아

  너는 나의 부상(副賞)인가

  아니면 아직도 남은 나의 부상(負傷)인가

 

계간 『주변인과 문학』 2019년 가을호 발표

 

 


 

안정옥 시인

서울에서 출생. 19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1993)와 『나는 독을 가졌네』(1995), 『웃는 산』(1999), 『아마도』(2009)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