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인한 시인 / 고려(高麗)의 새
마침내 소리하여 울음을 다 쏟고 죽을 줄 아는 새는 얼마나 아름다우랴.
신문의 행간 좁은 여울로 오늘도 내 마음은 산산히 흐른다. 찢긴 돛폭을 사나운 바람에 내어맡기고
실은 별것도 아닌 밥을 먹기 위해 한밤에도 열 번 스무 번씩 높은 물살에 뒤채는 악몽의 벼랑을 지나
우리가 언제 훨훨 새가 되어 날으랴. 몸으로 온몸으로 소리하여 울 줄 아는 고려의 새가 되랴.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 국화(菊花)
한 시대가 물 속처럼 깊어진다. 바람 푸르게 나부끼는 저녁 어스름 산발(散髮)을 한 이조 선비들의 혼이 돌아온다. 근심을 다 두고 돌아온다. 새로 바른 창호지에 피 묻은 귀를 대고 서릿발 속에서 치렁한 울음 소리를 건지고 있다. 한 덩이의 산이 강물 속에 실실이 풀릴 때까지.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허형만 시인 / 개로 인하여 외 1편 (0) | 2020.01.03 |
|---|---|
| 황지우 시인 / 12월 외 2편 (0) | 2020.01.03 |
| 박노해 시인 / 가리봉 시장 외 1편 (0) | 2020.01.03 |
| 안정옥 시인 / 1001번째의 섹스 (0) | 2020.01.03 |
| 김도은 시인 / 창을 버린 새 외 1편 (0) | 2020.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