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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인한 시인 / 고려(高麗)의 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3.

강인한 시인 / 고려(高麗)의 새

 

 

마침내 소리하여 울음을 다 쏟고

죽을 줄 아는

새는

얼마나 아름다우랴.

 

신문의 행간 좁은 여울로

오늘도 내 마음은 산산히 흐른다.

찢긴 돛폭을 사나운 바람에

내어맡기고

 

실은 별것도 아닌 밥을 먹기 위해

한밤에도

열 번 스무 번씩 높은 물살에 뒤채는

악몽의 벼랑을 지나

 

우리가 언제

훨훨 새가 되어 날으랴.

몸으로 온몸으로 소리하여

울 줄 아는 고려의 새가 되랴.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 국화(菊花)

 

 

한 시대가 물 속처럼 깊어진다.

바람 푸르게 나부끼는 저녁 어스름

산발(散髮)을 한 이조 선비들의 혼이 돌아온다.

근심을 다 두고 돌아온다.

새로 바른 창호지에 피 묻은 귀를 대고

서릿발 속에서 치렁한 울음 소리를 건지고 있다.

한 덩이의 산이 강물 속에

실실이 풀릴 때까지.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194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동길.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 『강변북로』,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시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가 있다. 37년간 중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년 2월 명예퇴직을 하였다. 1982년 전남문학상, 2010년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