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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시인 / 개로 인하여
손님이 와도 짖지 않는 개는 개가 아니다 잡상인이 와도 짖지 않는 개는 개가 아니다 더더욱 도둑을 보고도 꼬리치는 개는 개가 아니다
어느날 대낮에 도둑을 맞고 개 한 마리 얻어 왔다 짖지 않는 개 눈치만 보는 개 개가 개이기를 포기하는 그 개를 보며 자문했다
―왜 컹컹컹 짖지 못할까? ―무엇이 목청껏 짖지 못하게 할까? ―무엇 때문에 시원스럽게 짖을 수 없을까? ―왜? 어째서? 왜? 어째서?
萍 문학세계사, 1988
허형만 시인 / 꽃씨를 묻으며
꽃씨를 묻을 때 싱싱한 한 줄기 내일을 기다림은 꽃씨를 묻어 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고관대작이래도 이토록 떨리는 손놀림을 모른다. 작고 단단한 꽃씨, 꽃씨를 묻으며 햇살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리고 빗줄기도 기다리는 가냘픈 소망, 가을 하늘보다 맑은 마음으로 흙에 묻혀 흙이 되지 않기를 비는 깊은 기다림의 기도를 꽃씨를 묻어 본 사람만이 안다. 어둠 속에 묻혔던 빛살의 터지는 소리, 아픔 속에 갇혔던 뜨거운 눈물 솟구치는 소리, 아, 싱싱한 한 줄기 꽃바람 소리, 진정 꽃씨를 묻어 본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 환히 들을 수 있다.
목요시, 실천문학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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