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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노해 시인 / 밥을 찾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6.

박노해 시인 / 밥을 찾아

 

 

이런 밥,

부잣집 개라면 안 먹일거야

기계라도 덜거덕 소리가 날거야

우리들은 식사를 거부하고

마지막 지점,

옥상으로 모였다

 

바람마저 자그맣게 열리어 타오르는

심장을 얼리려는 듯 차가워

기대인 어깨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건 굶을 자유뿐이라고

낙엽 같은 웃음으로 배를 불렸다

 

거치른 얼굴들이 떨며

죽순처럼 일어설 때

구둣발소리 당당하게

번질한 얼굴들이 무겁게 내리눌러

두려운 눈과 눈 마주하며

먹구름짱 걷어낼 햇살처럼 떳떳한

우리를 확인했다

 

바위 같은 우리를 누가 흔들까

내 손가락 잡아먹은

톱니바퀴보다 더 힘껏 얽힌

밥 찾는 우리를 누가 가를까

 

사장님은 우릴 가족처럼 대한다더니

빼빼 말릴거냐!

쟁기질하는 소도 여물을 먹여야 일하는데

이 밥을 먹고 어찌 일해요!

중도반 3년 근무에

밤마다 피기침하는 영수가 울부짖고

당신네들 건강과잉은 우리가 곯은 육신이고

행복 어린 웃음은 일그러진 좌절과 슬픔이라고

누군가가 외칠 때

오! 당신들,

미끈한 혓바닥에 이젠 더 안 속아

경찰을 부른다 해도 이젠 더 못 참아

무식한 공돌이 공순이 기업 망친다

구속시킨다 해도

이제 더는 더는 물러설 수 없어

 

저들의 충견들이 몽둥이를 들 때

우리의 벗들은 피투성이가 되고

피빛이 가슴가슴 저며들어 비겁을 녹이고

눈망울에 불꽃이 튀어 솟아

열여섯 난 명이는 무섭다 울며

수수깡 같은 몸매를 내 야윈 품으로 안겨오고

표창장을 태우고 모범사원을 태우고

일어섰다

우뚝우뚝 일어선 우리,

밤을 지새며 노동하고 생산하는

하늘 우러러 떳떳힌 노동자의 자존으로

우리 밥 찾으러,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노동자의 걸음으로

두터운 벽을 박차고 나섰다

밥을 찾으러

우리 것 찾으러

당당하게 맞서 싸우며 울부짖는

오백의 함성이 공단하늘 메아리칠 때

양처럼 순한 표정으로 사정하는

저 숨겨진 발톱을,

저 웃음 뒤의 음모를 우리는 안다

 

마음까지 풍성한 밥을 놓고

자꾸만 흐르는 눈물

소줏잔을 돌리며

지금부터다!

굳게 잡은 손목으로

빛나는 눈동자 마주할 때

눈보라치는

꽁꽁 얼어붙은 땅 저편으로

다사로운 봄날은

무겁게 아프게 열리고 있었다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박노해 시인 / 사랑

 

 

사랑은

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

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

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

사랑은 갈라섬,

일치를 향한 확연한 갈라섬

사랑은 고통, 참혹한 고통

사랑은 실천, 구체적인 실천

사랑은 노동, 지루하고 괴로운 노동자의 길

사랑은 자기를 해체하는 것,

우리가 되어 역사 속에 녹아들어 소생하는 것

사랑은 잔인한 것, 냉혹한 결단

사랑은 투쟁, 무자비한 투쟁

사랑은 회오리,

온 바다와 산과 들과 하늘이 들고 일어서

폭풍치고 번개치며 포효하여 피빛으로 새로이 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은

고요히 빛나는 바다

햇살 쏟아지는 파아란 하늘

이슬 머금은 푸른 대지 위에

생명 있는 모든 것들 하나이 되어

춤추며 노래하는 눈부신 새 날의

위대한 잉태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박노해 시인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16세 때 상경하여 낮에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년 스물일곱 나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1989년, 분단 이후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 참혹한 고문 후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옥중에서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