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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현우 시인 / 물구나무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6.

최현우 시인 / 물구나무

 

 

  오래전부터 두개골은 완벽한 그릇이었다

  처음 죽은 인류의 머리를 받아들고

  물가에서 장례를 치르던 자의 생각

  이것으로 물을 떠 마실 수 있겠다

  두 손보다 많은 음식을 쥐고 먹을 수 있겠다

  그렇게 그릇을 발견한 자는

  짐승을 죽일 때 머리를 때리지 않았다

 

  설계자의 심중은 모르더라도

  그는 야바위꾼

  그릇들의 춤이 보고 싶었을 것

  머리를 땅에 박아대는

  인간들, 인간들 보며

  한바탕 웃고 싶었을 것

 

  휘젓는 손을 시간이라 부를까

  이리저리 엎어져 있게 하다가

  내내 감추고 있게 하다가

  딱 한 번 뒤집어버리는

 

  바닥으로 계속 엎지르면서

  국물 위로 두부 한 조각 실어 보내고

  싱크대 구멍 속으로 발이 빠지며

  홀로 이가 나가고

  쏟아지고 있는, 쏟아버리고 마는

 

  그러니 거꾸로 서서 울어볼까

  몸속에 정화수 한 사발 차오르도록

 

  누군가 비웃다가 기어이 화낼 때까지

  거꾸로, 거꾸로 서서

 

  어디가 망가졌는지

  곡예는 죽음을 건드리고 오는 일

 

  물이 샌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3월호 발표

 

 


 

최현우 시인

1989년 서울에서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발레니나〉가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