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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영미 시인 / 바보, 시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7.

최영미 시인 / 바보, 시인

 

 

  신문사에 나의 교양을 팔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오늘도

  기계 앞에 줄서서 돈은 뽑지 못하고

  밀린 글값 받으려 이메일을 보내

  정중하지만 분명하게 용건을 전달하고

  맞춤법이 틀리지 않았나 고민하고

  알아서 줄텐데 내가 성급하게 앞질러

  거래처에 나쁜 인상을 준 것같아 반성하지만

  우편함에 불룩한 공과금영수증이 무서워

  전화기를 들었다 놓고

 

  시인에게서 이런 편지 받고싶지 않다는 전자우편을 읽고

  크게 뉘우치는 답장을 보내고 15만원 때문에,

  생판 본 적 없는 기자와 어색해지는 직업이 싫어서

  실없이 보낸 날들이 불쌍해

  사십년 갈고 닦은 솜씨로 운을 맞추고

  괜한 시를 썼다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웹진 『시인광장』2009년 가을호 발표

 

 


 

최영미(崔泳美) 시인

1961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저서로는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비평사, 1994)와 『꿈의 페달을 밟고』(창작과비평사, 1998),『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 2005),『도착하지 않은 삶』(문학동네, 2009)와 산문집『시대의 우울: 최영미의 유럽일기』와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번역서 『화가의 잔인한 손: 프란시스 베이컨』이 있고 영역시집 등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