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인한 시인 / 바닷속의 언어(言語)
여름날 제왕이 걸어 두었던 무지개에 녹이 슬었어.
야차(夜叉)처럼 날뛰던 법령이 이것 봐, 땃땃하게 녹아 내리는 여기는 천국. 달디단 음성과 입술이 있어.
샤갈의 동네 사람들 술렁이는 잠이 있어. 동상(銅像)이 눈뜨는 눈을 떠 시간을 흔드는 거대한 바람이 있어.
제왕의 홍옥빛 의자를 침몰시킨 사람들의 연두빛 눈물. 눈물 속 뼈를 깎는 소금이 있어.
이것 봐, 이것 봐, 홍옥의 달빛을 문지르던 여자의 늑골이 있어.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 북풍(北風)
힘세고 까다로운 놈은 피해서 헐벗고 만만한 자의 살에 부딪쳐보고 싶었다. 채찍으로 내려치는 눈보라에 등을 밀리어 미류나무 몇 그루 밤 길을 가고 있는 변두리 마을 불빛 새는 처마 밑으로 스미고 싶었다. 내 고달픈 하루의 꿈을 끄고 그리움에 몸을 부비고 싶었다. 창틀마다 낮게 낮게 비척거리는 헐렁한 잠꼬대들 엷은 이불자락을 들추다가 홀로 눈뜨고 살아가는 부끄러움이여 부끄러움이여 굳게 잠긴 도시를 열고 소리치며 달려가 수도꼭지 속에 차라리 캄캄하게 얼어붙고 싶었다.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황지우 시인 / 꽃말 외 1편 (0) | 2020.01.07 |
|---|---|
| 최금진 시인 / 어린이들 (0) | 2020.01.07 |
| 박노해 시인 / 손 무덤 외 1편 (0) | 2020.01.07 |
| 최영미 시인 / 바보, 시인 (0) | 2020.01.07 |
| 허형만 시인 / 사람이 하늘이게 외 1편 (0) | 2020.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