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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시인 / 어린이들
그때 황혼은 지고, 나는 노인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맸지 타고 온 자전거는 고삐를 풀고 우주로 달아나고 나는 빈 목줄만 들고 터벅터벅 코스모스 꽃잎 속으로 걸어들어갔지 마음은 날마다 흰 문종이 펄럭거리는 빈 방이었어 이불 속에서 몰래 씹는 칡뿌리처럼 밤은 아리고 달콤해서 어머니는 나를 근심하셨지 어머니가 아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꽃상여가 마을 산등성이를 돌아 나가는 환각과 환청이 코스모스 속에 피었어 내가 키우던 개는 턱뼈가 부서진 채 끙끙 앓았지 나는 어린이였어, 그러나 어머니도 어린이였지, 모든 어른들은 어린이였어 우리는 짐승 같은 눈을 껌뻑거리며 서로의 상처를 혀로 핥아 줄 뿐 그 크고 따듯하고 비릿한 혓바닥이 우리들 위로의 전부였지 저녁 연기가 마을 사람들 영혼 몇 개를 감아 하늘로 오르고 국수에서 나는 밀가루 냄새 같은 그 밋밋하고 초라한 저녁을 후루룩 마시며 우린 커다란 탈바가지처럼 서로 마주보며 까르르 웃었다 어린 나는 어린 누이를 보고, 어린 누이는 어린 어머니를 보면서 우린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 같았지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을 갑자기 편을 갈라놓은 것처럼 그렇게 어느 날 서로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 훌쩍훌쩍 우는 누이의 초저녁 잠꼬대도 이상하고 나를 두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는 어머니도 문득 희미해지고 불이 켜지는 마을의 집들이 모래톱에 벗어놓은 신발짝 같을 때 노인들이 기역자로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굽은 채 잠에 들 때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전설 하나쯤 들려줄 어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베개를 턱에 괴고 숙제를 하다가 내 속의 어린 아이가 부스스 일어나 비 내리는 마을 뒷산을 혼자 오르는 것을 보았다 잘 자, 아버지 없다고 징징대지 말고, 내일 아침 다시 만날 거라는 기약도 없이 그러나 내일 다시 만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굶주린 태아처럼, 손가락을 빠는 어린이들처럼 베개를 안은 식구들 꿈을 꾸면 꼭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이상한 추락이 우리들을 재우고 있었지
웹진 『시인광장』 2015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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