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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인한 시인 / 어머니의 자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9.

강인한 시인 / 어머니의 자정

 

 

뇌수의 어디쯤

명주실 같은 혈관이 막혔을까

세롤 주사를 빼고

틀니 한 짝도 빼버리고

혼수에 빠져버린 뇌혈전의 어머니

 

비가 내리고

시멘트 같은 침묵 속의 10병동

유리창 밖 저 아래엔

도시의 악령이 울긋불긋

소리없이 웃고 있는 밤은 깊은데

 

내 첫아이를 업고

잠덧을 달래주던 골목길에서 듣던

그 개구리 울음 소리를

어머니는 찾아가고 있을까

너 하나 장가 보내고 죽을란다

 

그런 십여년 전의 과거를

어머니는 혼자서 찾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쌀 닷 되만큼 무거운 손주딸의 책가방을 들어주기 위해

이 깊은 밤 마중나가고 있을까

김정식 선생님 응급실로

황영기 선생님 9층 A동으로

잿빛 수은의 목소리가

병실 문틈으로 떨어진다

아무도 없는 병동 복도에 떨어진다.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 여름 안부(安否)

 

 

신문을 읽는다

궁금한 소식 더욱 궁금함

 

최고 기온 삼십 사 도

엿새째 퍼지르고 앉아버린

북태평양 고기압

 

공설운동장 건너편

산허리를 깎아내리는 공사장

황토빛 단층이 선연히 드러났다

 

문득 떠오르는 친구

직장을 그만둔 중년의 친구

해리 벨라폰테를 좋아했었는데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간 뒤

아무 소식 없음.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194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동길.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 『강변북로』,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시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가 있다. 37년간 중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년 2월 명예퇴직을 하였다. 1982년 전남문학상, 2010년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