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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내 마음의 개마고원
수많은 `너' 안에서 나는 `나'를 증언하게 된다. 너를 찾아서 영동 유흥가를 지나갔었다. 신흥 시가지 좋은 집들 사이 사이에, 아, 나는 황토에 뿌리박은 옥수수나무 몇 그루를 본다. 어디로 갔느냐, 너, 원주민이여? 거기 사람 있으면 소리지르고 나오시오. 대답 없고 옥수수나무만이 털을 꺼내놓고 모음(毛淫)을 한다.
가을, 내 마음의 개마고원이 청회색(靑灰色)의 개마고원으로 옮겨간다.
살아 있으세요. 없어서 그리운 당신.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 시인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착어(着語):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사의 핑경소리가 요즘은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 핸드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하나 태어난 모양이다. 젖소가 제 젖꼭지로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 같은 기다림을 네 삶에 물들게 하리라.
都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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