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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시인 / 저녁 비가(悲歌)
이 나라 목판본(木版本)의 가을 한 쪽으로 기러기떼 높이 날아 칼끝처럼 찌르는 일획의 슬픔 ― 갈대여.
끝끝내 말하고 죽을 것인가.
어리석은 산(山) 하나 말없이 저물어 스러질 뿐 역사란 별것이더냐 피 묻은 백지, 마초 한 다발.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 폐항
마을은 비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줄포로 가는 길, 야간 통행금지 구역의 언뜻 언뜻 스치는 진눈깨비 사이로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빈집 고추를 말리고 감자를 캐던 이들은 밤 도망으로 멀리 떠나가 버리고 몇 해째 이엉을 이지 않은 낡은 초가집 썰렁한 흙 바람벽이 헌 고무신짝으로 띄엄 띄엄 버려져 있었다. 갯벌에 촘촘히 박힌 발자국들 위로 바람은 날을 세워 징그럽게 울고 있었다. 줄포는 옛날에 항구였느니라, 고깃배, 소금배 둥싯거리던 포구가 바로 여기였느니라. 손가락질하는 곳에는 곰보로 얼룩진 뻘흙바닥 갯지렁이를 훑어 파는 새삼스런 기쁨으로 갯벌은 질척이는데 허물어진 선착장 가까이 저녁 햇빛 아래 폐선으로 남은 거기 겨울 하늘이 나직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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