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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동일방직을 지나며
미순아, 미안하다. 강의하러 양산리 한신대까지 가면서도 네가 일하고 있는 동일방직을 스치기만 하였다. 지난 달 네 몸이 아프다고 하여 작은아버지가 완도에서 올라오셨다는 말을 듣고도 가보지 못했다. 배운 놈들 인정머리 없어서가 아니라 니가 노동자라는 사실에 이 못난 오빠는 가슴이 얹혔던 거다. 쉬는 날이면 집에 와서 몸도 녹이고 김치랑 밑반찬이라도 좀 챙겨가도록 해라. 어쨌든 몸 성하게 조심하고 연락 좀 해라.
(나는 편지를 찢어버렸다.) (나는 안양으로 갔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 시인 /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골목 어귀에서 우연히, 똥개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똥개의 눈이하두 맑고 슬퍼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놈을 눈깔이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아 그랬더니그놈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를, 눈깔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우리나라 봄 하늘같이 보도랍고 묽은, 똥개의 그 천진난만-천진무후한 각막(角膜)→수정체(水晶體)→망막(網膜) 속에, 노란 봉투 하나 들고 서 있는, LONDON FOG표(表) ポリェステル 100% 바바리 차림의, 나의 전신(全身)이, 나의 전모(全貌)가, 나의 전생애(全生涯)가 들어가 있다. 그 똥개의각막(角膜)→수정체(水晶體)→망막(網膜) 속의, 나의 이 전신(全身), 이 전모(全貌), 이전생애(全生涯)의 바깥, 어디선가, 언젠가 우리가 꼭 한 번 만났었던 생각도 들고, 그렇지 않았던것도 같고 긴가민가 하는데 그 똥개, 쓰레기통 뒤지러 가고 나, 버스 타러 핑 가고, 전봇대에 ←전씨상가(田氏喪家), 시온 장의사, 전화 999-1984
餠煎こすシ觀壙 봄 ―나무에로, 민음사, 1985
황지우 시인 / 레이다를 빠져나간 새
자연보호(自然保護)하는 기지(基地)에로의 3박 4일 관광여행 : 핵지뢰밭 위의 푸른 도라지밭을 마구 밟고 다니는 노루. 산(山)까치가 콩알만한 불티로 레이다 그물을 빠져나간다. 새는 그물보다 높이높이 난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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