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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지우 시인 / 동일방직을 지나며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1.

황지우 시인 / 동일방직을 지나며

 

 

미순아, 미안하다.

강의하러 양산리 한신대까지 가면서도

네가 일하고 있는 동일방직을 스치기만 하였다.

지난 달 네 몸이 아프다고 하여 작은아버지가 완도에서  올라오셨다는 말을 듣고도 가보지 못했다.

배운 놈들 인정머리 없어서가 아니라

니가 노동자라는 사실에

이 못난 오빠는 가슴이 얹혔던 거다.

쉬는 날이면 집에 와서 몸도 녹이고 김치랑 밑반찬이라도 좀 챙겨가도록 해라.

어쨌든 몸 성하게 조심하고 연락 좀 해라.

 

(나는 편지를 찢어버렸다.)

(나는 안양으로 갔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 시인 /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골목 어귀에서 우연히, 똥개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똥개의 눈이하두 맑고 슬퍼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놈을 눈깔이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아 그랬더니그놈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를, 눈깔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우리나라  봄 하늘같이 보도랍고 묽은, 똥개의 그 천진난만-천진무후한 각막(角膜)→수정체(水晶體)→망막(網膜) 속에, 노란 봉투 하나 들고 서 있는, LONDON  FOG표(表) ポリェステル 100% 바바리 차림의, 나의 전신(全身)이, 나의 전모(全貌)가, 나의 전생애(全生涯)가  들어가 있다. 그 똥개의각막(角膜)→수정체(水晶體)→망막(網膜) 속의,  나의 이 전신(全身), 이  전모(全貌), 이전생애(全生涯)의 바깥, 어디선가, 언젠가 우리가  꼭 한 번 만났었던 생각도 들고, 그렇지 않았던것도 같고 긴가민가 하는데 그  똥개, 쓰레기통 뒤지러 가고 나, 버스 타러 핑  가고, 전봇대에 ←전씨상가(田氏喪家), 시온 장의사, 전화 999-1984

 

餠煎こすシ觀壙  봄 ―나무에로, 민음사, 1985

 

 


 

 

황지우 시인 / 레이다를 빠져나간 새

 

 

자연보호(自然保護)하는

기지(基地)에로의 3박 4일 관광여행 :

핵지뢰밭 위의 푸른 도라지밭을 마구 밟고 다니는 노루.

산(山)까치가 콩알만한 불티로 레이다 그물을 빠져나간다.

새는 그물보다 높이높이 난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본명은 황재우.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문학활동을 시작.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당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으로 옮겨 1985년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