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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 / 읽는다는 것
파종마다 고요를 깨뜨리는 범종소리가 들어있다 동토를 건너온 종자들이 다시 풍경소리를 낼 때 풀도 나무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깨우친다
일생 서서 흔들리는 나무가 무연으로 서 있겠는가 그의 무릎 아래 근골 아래 글썽이는 마음 고여놓고 슬픈 전설로 남아있는 여름하늘의 별자리를 우르런다 별에도 소 끄는 남정과 베 짜는 여인네가 있다는 상상은 인간이 하늘로 오르고 싶다는 희원 그 희원이 멀면 멀수록 그것은 얼마나 슬픈 아름다움인가
돌아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를 예까지 데리고 온 것은 성좌전설보다 억세고 질긴 힘이다 견인이라는 말은 목이 마르다는 말 목마르게 그의 구문을 따라가야 최소한의 나무의 심금을 읽을 수 있다 생각하면 구름이 남루해진 것도 그가 너무 멀리 걸어온 까닭이다 얼마나 몸이 무거웠으면 구름은 비가 되어 내리겠는가 비라고 부를 때 우리는 벌써 맹목의 외투 반신이 젖거나 비애의 여울물에 들어서지 않느냐
독창에 찔린 가슴으로 누굴 사랑해 보지 않고는 뇌우에 부러진 나무를 말해선 안 된다 그러기에 천년을 견딘 나무가 그를 관통해 간 유구를 읽게 한다 아니다, 천년을 견딘 나무가 나에게 시심을 깨워 그를 쓰게 한다
그 구절을 읽는 데도 백 가지 마음이 있었을 터이니 나는 내 비애의 날줄 지나간 북의 횡행으로 읽는다 자고 나도 나무가 그곳에 있다는 거룩한 안도 그것은 성좌의 불멸과도 같은 것
몇 장을 읽으면 봄비 소리, 몇 장을 더 읽으면 천둥과 먹구름 거기에 어찌 깊은 주름으로 옹이진 삭풍은 없겠는가 저 횡액들을 모아 푸른 비로드를 만든 나무의 海岸을 읽게 하는 연원 모를 힘
웹진 『시인광장』 2011년 9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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