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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시인 / 풀칠하기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과시간표를 새로 작성해서 분필통에 붙히던 날 마흔 두 살의 동료 교사가 죽었다. 나보다 두 살 위였지만 나보다 건장하던 그였다.
요쿠르트 아줌마가 박 선생의 소식을 듣고 고개 숙여 울었다. 윤 여사, 왜 어제 거기로 안 나왔지? 박 선생의 실없는 농담이 그의 책꽂이에 아직도 해법 수학으로 꽂혀 있는데,
풀 속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친화력이 들었나 보다.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시간표와 분필통은 서로를 죽자 사자 사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장례식날 아침 그의 어린 유가족을 보았다. 우리 집 아이들 또래 그 애들은 울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숨어 울었다.
이십년 가까이 개도 안 먹는 똥을 누며 삶의 함수를 하루내 풀던 사람 내가 단락을 나누고 문장을 자를 때 옆 교실에서 인생보다 어려운 문제에 매달리던 사람,
그에게는 아말감으로 때운 어금니가 두 대 충치로 괴로와하는 나를 보며 그는 자신의 입을 벌려 치료된 어금니를 보여주었다. 휴식 시간의 햇살이 박 선생의 어금니를 기웃거리던 그게 지난 가을이던가.
풀칠을 단단히 해서 책상의 한 귀퉁이에도 나는 시간표를 붙여 놓았다. 아마도 이게 호구의 상책이지 싶어서.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 해 지는 곳으로 가서
해 지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 아들아 우물에서 냉수 한 바가지 벌컥벌컥 마시고 잎 진 감나무 한 그루를 활활 태우고 넘어가는 저녁 놀 속에 나도 잎 진 감나무 한 그루로 서고 싶다 해 지는 곳에서 꿈 같은 그리움을 부비며 하룻밤인 듯 남은 목숨을 태워 거기서 살고 싶다.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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