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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시인 /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려다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날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이 되는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처럼 순간이 순간을 불러 순간에 복무하는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 모양으로 흘러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웹진 『시인광장』 2013년 9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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