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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의섭 시인 / 명리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2.

윤의섭 시인 / 명리

 

 

  같이 겪었는데 서로 다른 기억을 떠올린다

  시력이 다른 두 눈으로 네 얼굴을 바라보는 것처럼

  함께 살아왔지만 공유할 수 없는 연대

 

  나는 쓸쓸함을 갖고 있다 아무리 맞춰 봐도 네겐 없는

 

  삼십년 전 얘기를 꺼낸다 이젠 그래도 된다 싶어서였겠지만

  실은 몇 번이고 들었던 얘기

  그건 내가 널 저버렸기 때문이야 이 말을 꺼내지 않아서 너는 늘 번복한다

  사실과 다르고 너는 늘 유리했다

 

  *

 

  가을이었는데 겨울이었다

  자두였는데 사과였다

  약속이었는데 바람이었다

  늦었는데 그게 끝이었다

 

  *

 

  단풍은 시작이 아니라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함께 바라보았지만 판독이 달라서

  누군가에게 숙명은 빨리 오고 누군가에게 이 이상의 불가능은 없다

 

  너 좀 나눠줘야겠다

  내게 없는 연대에 네가 있었다면

  이젠 너를 떠올려야겠다

  아무리 맞춰 봐도 없는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2월호 발표

 

 


 

윤의섭 시인

1968년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와 1994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문학과지성사, 1996), 『천국의 난민』(문학동네, 2000),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문학과지성사, 2005), 『마계』(민음사, 2010)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주간역임. 현재〈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