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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유홍준 시인 / 빵 위에 쓴 글씨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2.

유홍준 시인 / 빵 위에 쓴 글씨

 

 

  우리는 빵 위에 촛불을 꽂았네

  우리는 글자 위에 촛불을 켰네

  글자는 금세 환해지고

  빵은 금세 환해지고

  우리는 글자가 새겨진 빵 주위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고깔모자를 쓴 아이는 후, 입김을 불었네

  우리는 축 생일을 자르고 우리는 축 개업을 자르고

  우리는 축 발간을 잘라 한 조각씩 나눠 먹었네

  우리는 빵 위에 새겨진 글자를 나눠 먹었네

  축 생일이 잘려지고 축 개업이 잘려지고

  축 발간이 잘려지고 빵 위에 새긴 글자들은 잘리어졌네

  빵 위에 글자를 새기는 건 나빠, 좋아?

  대답이 필요 없는

  모임이 끝나고

  우리는 글자처럼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네

 

웹진 『시인광장』 2010년 7월호 발표

 

 


 

유홍준 시인

1962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 1998년 《시와 반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喪家에 모인 구두들』(실천문학사, 2004)과  『나는 웃는다』(창작과비평, 2006),  『저녁의 슬하』(창비, 2011)가 있음. 2007년 시작문학상과 이형기문학상, 2013년 제2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