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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형만 시인 / 형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2.

허형만 시인 / 형님

 

 

아우야 너는 모른다 너는 몰라

밤이면 밤마다 꿈길 삼백 리

훠어이 훠어이 내 고향 찾아

맨발로 가슴 풀고 달리는 심정

흙범벅 뒤엄범벅 함께 뒹굴던

문전 옥답 빼앗긴 지 어언 십여년

경기도로 강원도로 다시 전라도

공사판 골방에서 새우잠 자도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고향 찾아 가는 꿈이 제일 달더라

쓸만한 놈 다 떠나간 고향이지만

성만이도 길만이도 다 떠난 고향이지만

봉화산 안산재엔 소울음 가득

할아버지 누워 계신 뒷산엔 진달래 만발

어서 오라 반기던 꿈이 제일 달더라

아우야 너는 모른다 너는 몰라

타향살이 공사판에 어언 십여년

그래도 유정한 게 흙뿐이라

우리같은 뚝심 센 촌놈이야

흙냄새 풀냄새가 제일 그리워

이 밤도 주막집 막걸리 맛만은 못하지만은

쇠주 한잔에 타는 목을 적시는구나.

 

목요시, 실천문학사, 1983

 

 


 

 

허형만 시인 / 훈민정음을 다시 읽으며

 

 

우리 모두 깨어나자 조선의 풀들이여

사랑이여 우린 너무 춥구나

팔월이라 뙤약볕도

우리네 발뿌리까지는 뎁히지 못하는구나

돌과 돌 사이에서도

넉넉한 안식처로 알고 뻗어왔거니

향토의 향긋한 내음

꿀물처럼 달콤한 강줄기

그 속에 우리는 생명의 씨를 뿌려왔는데

사랑이여 사랑이여 우린

여지껏 새벽의 긴 터널도 못 빠져 나오고

노령산맥 칡덩쿨로 얽히어

눈먼 태양만 바래왔구나

아직도 우리는 어린 백성

청보리만한 오기도 쑥대만한 핏줄도

청청하늘 가르는 번개만도 못하고

아직도 우리는 어여쁜 백성

오 사랑이여 우린 너무 떨리는구나

사나운 바람의 위협 앞에

숨도 크게 못 쉬는

사랑이여 사랑이여 우린

그 무슨 역사로도 가리울 수 없는 누우런 벌거숭이

어둠 속에서 질펀하게 퍼질러진

우리네 피눈물 우리네 피고름

사랑이여 우린 너무 가냘프구나

우리 모두 깨어나자 조선의 풀들이여.

 

萍 문학세계사, 1988

 

 


 

허형만 시인

1945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 중앙대 국문과와  성신여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73년《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명』, 『풀잎이 하나님에게』, 『모기장을 걷는다』, 『입맞추기』, 『이 어둠속에 쭈그려 앉아』, 『공초』, 『진달래 산천』,  『풀무치는무기가 없다』 등과 시선집으로 『새벽』, 활판시선집 『그늘』 등과 평론집으로 『시와 역사 인식』, 『영랑 김윤식 연구』 등이 있음.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한성기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우리문학작품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목포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겸 교육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