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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경림 시인 / 3월(月) 1일(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2.

신경림 시인 / 3월(月) 1일(日)

 

 

골목마다 똥오줌이 질퍽이고

헌 판장이 너풀거리는 집집에

누더기가 걸려 깃발처럼 퍼덕일 때

조국은 우리를 증오했다 이 산읍에

삼월 초하루가 찾아 올 때.

 

실업한 젊은이들이 골목을 메우고

복덕방에서 이발소에서 소줏집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음모가 펼쳐질 때

조국은 우리를 버렸다 이 산읍에

또다시 삼월 일일이 올 때.

 

이 흙바람 속에 꽃이 피리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이 흙바람을

타고 봄이 오리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아아 이 흙바람 속의

조국의 소식을 우리는 믿지 않는다

 

계집은 모두 갈보가 되어 나가고

사내는 미쳐 대낮에 칼질을 해서

온 고을이 피로 더럽혀질 때

조국은 영원히 떠났다 이 산읍에

삼월 초하루도 가고 없을 때.

 

농무, 창작과비평사, 1975

 

 


 

 

신경림 시인 / 4월 19일, 시골에 와서

 

 

밤새워 문짝이 덜컹대고

골목을 축축한 바람이 쓸고 있다.

헐린 담장에 어수선한 두엄더미 위에

살구꽃이 피고 어지럽게

피어서 꺾이고 밟히고

그래도 다시 피는 4월.

 

나는 남한강 상류 외진 읍내에 와서

통금이 없는 빈 거리를 헤매이며

어느새 잊어버린

그날의 함성을 생각했다.

티끌처럼 쏠리며 살아온 나날.

돌처럼 뒹굴며 이어온 세월.

 

다시 그날의 종소리가 들리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밤은 어두웠다.

친구를 생각했다. 찬 돌에 이마를 대고

깊은 잠이 들었을 친구를

그 손톱에 배었을 핏자국을.

 

4월이 와도 바람은 그냥 차고

살구꽃이 피어도 흐느낌은 더 높은데

축축한 바람은 꽃가지에 와 매달려

친구들의 울음처럼 잉잉댔다.

진달래도 개나리도 피고

꺾이고 밟히고 다시 피는 4월

밤은 좀체 밝아오지 않았다.

 

새재, 창작과비평사, 1979

 

 


 

 

신경림(申庚林) 시인.

 

1936년 충청북도 중원에서 태어나 1960년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한직의 추천을 받아 1955~56년 〈문학예술〉에 시 〈낮달〉·〈갈대〉·〈석상〉 등이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러나 곧 건강이 나빠져 고향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다시 서울로 올라와 현대문학사·휘문출판사·동화출판사 등에서 편집일을 했다.

 

한때 절필하기도 했으나 1965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여 〈원격지〉(동국시집, 1970. 1)·〈산읍기행〉(월간다리, 1972. 8)·〈시제(詩祭)〉(월간중앙, 1972. 12) 등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초기시에서 보여준 관념적인 세계를 벗어나 막연하고 정체된 농촌이 아니라 핍박받는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다.

 

1973년에 펴낸 첫 시집 〈농무(農舞)〉의 발문에서 백낙청은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 마땅한 문학"이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의의가 있다고 했다. 이후 그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농촌 현실을 기초로 하여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시집으로 〈새재〉(1979)·〈달넘세〉(1985)·〈남한강〉(1987)·〈우리들의 북〉(1988) 등을 펴냈고, 그밖에 평론으로 〈농촌현실과 농민문학〉(창작과 비평, 1972. 6)·〈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마당, 1982. 6)·〈역사와 현실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시〉(오늘의 책, 1984. 3) 등을 발표했다.

 

1973년 만해문학상,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다. 1992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맡았다.

 

  


  

신경림 시인

1935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 이한직의 추천으로 월간 《문학예술》에 〈낯달〉1955. 12), 〈갈대〉(1956. 2), 〈석상〉(1956. 4)을 발표하며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농무』, 『새재』, 『달넘세』, 『남한강』, 『가난한 사랑의 노래』, 『길』 등과 산문집 『민요기행 1·2』, 『강따라 아리랑 찾아』, 『시인을 찾아서』, 『낙타』 등이 있음.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공초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