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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지우 시인 / 메아리를 위한 각서(覺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3.

황지우 시인 / 메아리를 위한 각서(覺書)

 

 

  불 속에 피어오르는 푸르른

 

  풀이어 그대 타오르듯

 

  술 처마신 몸과 넋의 제일 가까운

 

  울타리 밑으로 가장 머언

 

  물소리 들릴락말락

 

  (우리는 어느 계곡(溪谷)에 묻힐까 들릴까)

 

  줄넘기하는 쌍무지개

 

  둘레에 한 세상 걸려 있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황지우 시인 / 목마와 딸

 

 

우리 집으로 오는 길은 시장이  있고 그 길로 한 백 미터쯤 위로 올라오면 호남 정육점이 있는데요, 거기서 오른쪽 생선가게 있는 샛길로 올라오면 신림탕이라고 공중목욕탕이 있고요, 그 뒤공터에 소금집과 기와공장이 있지요. 소금집은 루핑으로 지붕을 얹은 판잣집인데요, 거기서 다시 연립주택이 있는 골목길로 쭉 타고 올라오면 여덟 번째 반슬라브 가옥이 바로 우리 집이지요. 이 집에서 나는 번역도 하고 르포도 쓰고 가끔 시(詩)도 쓰면서 살지요. 마누라가 신경질부리면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소금집 공터에 나와 놀지요. 공터의 큰 포플라나무 그늘에 앉아노인들은 화투를 치고.

 

어떤 날은, 리어카에 목마  여섯 대를 달고 아이들에게 백 원씩 받고는 한 이십 분이고 삼십분씩 태워주는 할아버지가 그 그늘 아래로 오지요. 나는 환호하는 딸을 하얀 백말에 앉혀주고 그하얀 백말의 귀를 잡고 흔들어 주지요. 아, 나의 아름다운 딸은 내 눈 앞에서, 네 발을 묶은 용수철을 단방에 팍  끊고 튀어가는 듯하지요. 말갈기를  흩날리며 나의 아름다운 딸은 기와공장에서불어오는 모래 바람 속으로, 아, 노령 연해주땅으로,  멀고 안 보이는 나라로 들어가버린 듯하지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본명은 황재우.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문학활동을 시작.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당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으로 옮겨 1985년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