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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메아리를 위한 각서(覺書)
불 속에 피어오르는 푸르른
풀이어 그대 타오르듯
술 처마신 몸과 넋의 제일 가까운
울타리 밑으로 가장 머언
물소리 들릴락말락
(우리는 어느 계곡(溪谷)에 묻힐까 들릴까)
줄넘기하는 쌍무지개
둘레에 한 세상 걸려 있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황지우 시인 / 목마와 딸
우리 집으로 오는 길은 시장이 있고 그 길로 한 백 미터쯤 위로 올라오면 호남 정육점이 있는데요, 거기서 오른쪽 생선가게 있는 샛길로 올라오면 신림탕이라고 공중목욕탕이 있고요, 그 뒤공터에 소금집과 기와공장이 있지요. 소금집은 루핑으로 지붕을 얹은 판잣집인데요, 거기서 다시 연립주택이 있는 골목길로 쭉 타고 올라오면 여덟 번째 반슬라브 가옥이 바로 우리 집이지요. 이 집에서 나는 번역도 하고 르포도 쓰고 가끔 시(詩)도 쓰면서 살지요. 마누라가 신경질부리면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소금집 공터에 나와 놀지요. 공터의 큰 포플라나무 그늘에 앉아노인들은 화투를 치고.
어떤 날은, 리어카에 목마 여섯 대를 달고 아이들에게 백 원씩 받고는 한 이십 분이고 삼십분씩 태워주는 할아버지가 그 그늘 아래로 오지요. 나는 환호하는 딸을 하얀 백말에 앉혀주고 그하얀 백말의 귀를 잡고 흔들어 주지요. 아, 나의 아름다운 딸은 내 눈 앞에서, 네 발을 묶은 용수철을 단방에 팍 끊고 튀어가는 듯하지요. 말갈기를 흩날리며 나의 아름다운 딸은 기와공장에서불어오는 모래 바람 속으로, 아, 노령 연해주땅으로, 멀고 안 보이는 나라로 들어가버린 듯하지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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