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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지우 시인 / 박쥐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5.

황지우 시인 / 박쥐

 

 

그는 자유롭다 : 그는 외롭다 : 캄캄한 날들과 환한 밤들 사이의 경계(境界)를 그는 알기 때문에, 그 불가능성을 그는 넘나들기 때문에.

 

나는 시궁창에 살고 있다. 이 편안한 더러움이여. 전후(戰後)에

태어난 후,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으며,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아무것도, 아무도.

 

사랑하는 천적(天敵) : 이상하다, 천적(天敵)에게서 묘한 애정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은,

내 안에 이적(利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접선자(接線者)여.

 

1985년 5월 21일  pm 3시, 종로서적 앞으로 나오라(ps :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할 것). 종로1가에서 5가까지의 거리는 전투경찰(戰鬪警察)의 거리다.

 

 붙들려 가 털 깎인 경험의 소유자여,  견뎌라, 모독감을, 이 땅에 살기  위해서는, 살아남기위해서는.

 

안심하라. 흰 이 드러내며 파르르르 떨며,

털 세운 하이에나, 난,

죽은 고기만 안심하고 탐식하는 이빨들을 위한 살덩어리가 아냐.

 

때로는, 유학이나 가버릴까.

다시 감옥으로 갈까,

왔다리갔다리하는 내 험악한 무의식(無意識)의 요양소는 어디, 어디

 

식은 팥죽을 담은 내 염통이여.

다른 것은 다 속여도 시(詩)만은 못 속이겠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관대. 누가 나에게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현실에로 열린 나의 시적 통로는 련민이오.

련민은 두가지가 있소.

하나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의 그것이요,

다른 하나는 상처받은 자의 그것이오.

 

나의 그것은 나의 상처요.

라고 답할까? 아냐, 연민은 도덕적 임포야, 혁명의 설사제야

 

미문화원(美文化院)을 점거한 학생들, 자진 해산하고 나오다.

국민들 크게 안도.

 

아이들은 고도(孤島)로 갔다.

기자놈들, 체제의 합승자들, 그들의 충성심은

가면 같이 간다는 위기감이야.

 

나의 동시대인들에게는 해태 타이거즈와 광주 사태를 연관 짓는 묵시록적 경향이 있.

 

시(詩)는 나에게 성적(性的)이다 : 매혹과 수치심이 함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한 현실의 수태(受胎)이다.

 

 헛물키지 말고, 낳고 낳아라.

나의 스승,  유 아무개 아무개는 위대한 무위도식주의자(無爲徒食主義者)이다.

당신을 숭배합니다 : 너를 죽일거야.

이중배 보아라. 어서 와서 나를 들것으로 옮겨가다오.

여기는 막막한 섬이다.

 

                    85­05­27

                    종로에서

                    똥개로부터

 

날뛰는 나의 정신을 나는 유물론으로 치유한다.

미치광이병에는 이게 약이요, 극약이다.

 

어느 날, 나는 월경(越境)할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만원버스 속에서 늙은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

그 늙은 여자는 창 밖만  내다볼 뿐, 내 무거운 가방은 받아주지 않는다. 철판이 깔린 가슴.개. 똥. 씹. 걸레. 튀김. 죽일. 다음날 아이 업은 젊은 여자가 내 자리 쪽으로 다가온다.

 

겁부터 난다. 나는 눈을 감고 가수(假睡) 상태(狀態)에 들어간다.

너, 민중 없는 민중주의자! 가짜! 냄새 나! 꺼져!

 

나는 왜 적(敵)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적전(敵前)에서 자꾸 뒤돌아보는가.

80년대는 막장이냐.

최전선이냐.

 

너 살아 넘어갈래, 죽어 돌아올래. 그렇지만,

돌아보라. 가장 현실적인 색(色)은 탄색(炭色)이다. 그대 손은 묻어 있다.

 

내 마음 속의 동굴 속의 외로운 박쥐여

내 피를 빨아먹어라. 실컷, 그대 투명한 색(色)의

악령(惡靈)이 임할 때까지. 내 알몸의 투명한 색(色)의 닻이 해저(海底)의,

밑 모를 심연의 땅을 찍을 때까지.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본명은 황재우.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문학활동을 시작.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당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으로 옮겨 1985년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