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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천양희 시인 / 끝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5.

천양희 시인 / 끝

 

 

천둥 번개같이

한목숨 뚝 끊어놓고

쑥대밭처럼 헝클어진

날마다 밤마다

긴 행렬 짓고

심장을 가로지르는 슬픔에게 물을 뿌리며

다시 슬픔을 키우듯이

가도가도 끝없이

이 너른 세상 낮은 강둑에 서서

뜀박질에 져도 절망 안하는

아이처럼 나르는 새떼들 보노라면

날벼락 맞고 돌아누운 강물에

달이 지고 해가 지고

잘못도 없었지만 죄인처럼

꺾이기만 하는 그대의 크신 하늘에도

사색이 된 얼굴 숨어들 곳

펼쳐놓지 않으시고

전신을 관통하기만 하시는

벼락같이

한 목숨 뚝 끊어놓고.

 

사람 그리운 도시에, 나남, 1988

 

 


 

 

천양희 시인 / 나의 어리석음이

 

 

나의 어리석음이

저 혼자 밖에 나가

아이처럼 놀고 있다

 

언제부터

끝없는 놀이는 시작되었는지

골목 담보다

더 커버린 나는

떠들썩한 골목

언저리에 붙어

기웃 기웃 보기만 하고

나의 어리석음만

너 혼자 놀고 있다

 

이 땅에는 너무 많은 아이

아이들 틈에 끼어

허덕 허덕 떠돌다가

놀아 줄 아이 없어

아이와 아이 사이

골목과 골목 사이

쓸쓸히 걸어가는 나의 어리석음

 

언제부터

끝없는 놀이는 시작되었는지

언젠가는 끝이 날

아이들의 놀이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웃고 있는 아이들 곁에서

못난 나의 어리석음만

고개 떨군다.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평민사, 1983

 

 


 

천양희(千良姬) 시인

1942년 부산에서 출생. 1966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