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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 / 끝
천둥 번개같이 한목숨 뚝 끊어놓고 쑥대밭처럼 헝클어진 날마다 밤마다 긴 행렬 짓고 심장을 가로지르는 슬픔에게 물을 뿌리며 다시 슬픔을 키우듯이 가도가도 끝없이 이 너른 세상 낮은 강둑에 서서 뜀박질에 져도 절망 안하는 아이처럼 나르는 새떼들 보노라면 날벼락 맞고 돌아누운 강물에 달이 지고 해가 지고 잘못도 없었지만 죄인처럼 꺾이기만 하는 그대의 크신 하늘에도 사색이 된 얼굴 숨어들 곳 펼쳐놓지 않으시고 전신을 관통하기만 하시는 벼락같이 한 목숨 뚝 끊어놓고.
사람 그리운 도시에, 나남, 1988
천양희 시인 / 나의 어리석음이
나의 어리석음이 저 혼자 밖에 나가 아이처럼 놀고 있다
언제부터 끝없는 놀이는 시작되었는지 골목 담보다 더 커버린 나는 떠들썩한 골목 언저리에 붙어 기웃 기웃 보기만 하고 나의 어리석음만 너 혼자 놀고 있다
이 땅에는 너무 많은 아이 아이들 틈에 끼어 허덕 허덕 떠돌다가 놀아 줄 아이 없어 아이와 아이 사이 골목과 골목 사이 쓸쓸히 걸어가는 나의 어리석음
언제부터 끝없는 놀이는 시작되었는지 언젠가는 끝이 날 아이들의 놀이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웃고 있는 아이들 곁에서 못난 나의 어리석음만 고개 떨군다.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평민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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