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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호승 시인 / 겨울소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5.

정호승 시인 / 겨울소년

 

 

별들에게 껌을 팔았다

지게꾼들이 지게 위에 앉아 떨고 있는

서울역에서 서부역으로 가는 육교 위

차가운 수은등 불빛이 선로 위에 빛나는 겨울밤

라면에 말은 늦은 저녁밥을 얻어먹고

양동에서 나온 소년

수색으로 가는 밤기차의 기적 소리를 들으며

별들에게 껌을 팔았다

밤늦도록 봉래극장 앞을 서성거리다가

중림동 성당의 종소리를 듣는

겨울소년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정호승 시인 / 구두 닦는 소년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 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 아래 짓밟혀 나뒹구는

지난밤 별똥별도 주워서 담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담는다.

이 세상 별들 한 손에 모아

어머니 아침마다 거울을 닦듯

구두 닦는 사람들 목숨 닦는다.

목숨 위에 내려앉은 먼지 닦는다.

저녁별 가득 든 구두통 메고

겨울밤 골목길 걸어서 가면

사람들은 하나씩 별을 안고 돌아가고

발자국에 고이는 별바람 소리 따라

가랑잎 같은 손만 굴러서 간다.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비평사, 1979

 

 


 

 

정호승 시인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새벽편지》 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이, 어른이 읽는 동화로 《연인》《항아리》《모닥불》《기차 이야기》 등이, 산문집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