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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천양희 시인 / 못질을 하며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6.

천양희 시인 / 못질을 하며

 

 

낡고 허물어진, 여기저기

크고 작게 못질을 한다

바르고 곧은 것들만 골라

모진 세상 사방에

자꾸 못질을 한다

 

나에게는 나의 운명이

못 뒤에는 몇 개의 못들이 박히고

상처난 자리 떼우듯

군데 군데 못질을 하노라면

무수히 박혀

되 아무는 상처의 어디

지은 죄 얼굴 가리고 숨어 있다

 

목수(木手)여

생전(生前)에 박아두었던

못 하나 빼어들고

지은 죄, 지은 죄라며

우리의 죄 위에도 못질을 하라

불현듯 눈을 뜨고

마침내 십자가(十字架)를 볼 수 있도록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평민사, 1983

 

 


 

천양희(千良姬) 시인

1942년 부산에서 출생. 1966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