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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 꼽추
마침내 아침이 오면 너의 등에는 장미가 피고 나의 등에는 버섯이 핀다.
너는 등에 푸른 산을 가꾸고 나는 등에 나의 무덤 지고 다닌다.
너는 금은방에 빛나는 보석을 사고 나는 풀잎 위에 구르는 이슬을 딴다.
너는 어머니를 위하여 길을 쓸지만 나는 아직 누굴 위해 길을 쓸 줄 모른다.
너는 피와 눈물을 훔치지 않고 어린 걸인들을 위하여 밥을 데운다.
아내와 아이들의 웃음을 먹고 네가 길을 떠나면 머나먼 산길.
나는 집 앞 골목길도 벗어나지 못하고 우는 아이 울음도 닦아주지 못한다.
너의 등뒤로 숨을 자는 다 숨고 너의 피리 소리에 춤출 자는 다 춤춘다.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비평사, 1979
정호승 시인 / 너의 무덤 앞에서
이 땅을 걸으면 오늘도 내 발목엔 너의 쇠사슬이 채었나보다
이 하늘을 바라보면 오늘도 내 두 눈엔 너의 화살이 날아와 박혔나보다
아들이 아버지를 묻어주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묻어주는 오늘밤
싸락눈 맞으며 산새가 되어 어느 하늘 산길 가는 너를 좇으면
눈발이 날리는 산모퉁이 하늘가로 울며 떠나가는 네가 보인다
새벽편지, 민음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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